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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얼기설기] 'Let it go'와 프랙탈

입력
2015.05.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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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공부 밑거름 중학시절 만화

과학이 점수 도구 되면 흥미 사라져

실리콘밸리 차고 창업 정신 배워야

세계에서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 앞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뒤엉켜 있으니 소매치기들에게는 좋은 표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세기의 명작을 구경하며 나누는 대화는 박물관 치고는 꽤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그림뿐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인파 등에 정신을 뺏겨 가방이나 지갑 따위에 관심을 쏟기 힘든 환경이다.

여러 언어가 뒤섞여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혼돈에 빠졌다는 바벨탑 마냥 ‘모나리자’ 앞도 여러 나라의 말이 오고 간다. 이 와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귀에 속속 들어오곤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낯선 외국에서 그리운 우리 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가 아이와 함께 보던 ‘겨울왕국’의 주제곡 ‘Let it go’를 듣던 중 귓속으로 쏙 들어온 ‘프랙탈’이라는 단어 역시 그러했다. 프랙탈은 부분과 전체가 구별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슷한 형태들로 이루어진 구조를 말한다. 여주인공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성을 만들며 부르는 노래에 나오는데, 하늘에서 뿌려지는 눈송이가 대표적인 프랙탈 구조이다. ‘프랙탈’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잘 들렸던 이유는 필자의 전공 분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얼기설기 이루고 있는 관계와 상호작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복잡계 현상을 파고 들면 프랙탈 이론을 만나게 된다. 필자가 프랙탈을 처음 만난 건 중학생 때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던 동생이 사 온 학습만화를 통해서다. 수학과 물리 분야의 이야기를 십여권의 만화로 풀어낸 전집이었는데, 인생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준 만화이다. 만화의 내용이 경시대회의 문제로 출제되어 고득점을 받게 되고, 이 때문에 물리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물리학과로 진학한 이유였다.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프랙탈’은 물리학의 많은 분야 중 ‘복잡계’를 전공분야로 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어릴 때 접하는 과학이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 사회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좌우할 토양이 된다. 과학기술은 어렵고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과학문화 활동에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진다. 학습만화뿐 아니라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책과 잡지도 있다. 각종 경진대회나 캠프도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위 ‘스펙 쌓기’의 관점으로 과학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과학을 재미있게 이해하기 보다는 점수 따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도리어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으로 시선을 옮기면 환경은 더욱 척박해진다. 성인을 위한 과학잡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과학도서들은 자기계발서나 실용도서의 저력에 서점의 한 구석 켠으로 밀려나곤 한다. 과학 전문 방송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에 리모콘을 빼앗기고, 기상현상이라는 과학이 담겨 있는 일기예보는 기상캐스터의 옷차림에 더 관심이 많다.

실리콘밸리 창업의 상당수가 차고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단지 임대료가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공구를 이용해서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부수면서 익숙해진 메이커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곳이 차고이다. 과학기술 역시 문화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적용되는 곳이다. ‘Let it go’의 본고장에선 많은 이들이 ‘프랙탈’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노래에서는 ‘프랙탈’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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