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탄생 100주년 대규모 기획전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우성 김종영(1915~1982)이란 이름은 생소하다. 미술사에서 그 이름은 한국 미술에서 독자적인 추상조각을 최초로 시도한 조각가로 기록돼 있다. 같은 세대 한국의 근대 조각가들이 인체와 자연을 정밀 묘사하는 동안 김종영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모색하다 추상조각을 시작했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발표한 ‘새’는 발표 당시 “관객을 우롱하는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긴 부리와 가는 목, 두툼한 몸통 등 기본적인 새의 특징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생략한 작품이다. 그의 탄생 100년을 맞아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7월 26일까지 열리는 ‘김종영의 조각, 무한의 가능성’전(02-880-9504)은 ‘새’‘꿈’‘전설’등 그의 추상조각 대표작들을 집중 조명한다. 김종영이 기하학적 단순성을 추구한 서양의 추상조각을 무조건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묘사하고 싶었던 것은 자연물에서 나타나는 ‘구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론을 밝힌 글에 추사 김정희의 서화(書畵ㆍ그림처럼 쓴 글자)와 서양화가 폴 세잔의 입체파 회화에서 나타나는 “견고한 구성과 중후한 재질감”을 조각으로 구현하려 한다고 적었다. 서울대미술관에서는 김정희의 서화 ‘영산(詠山)’과 세잔의 ‘영원의 여성’을 김종영의 조각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김종영의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의 발자취는 8월 28일까지 ‘김종영의 삶과 예술’전이 열리는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02-3217-6484)에서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김종영의 조각이 서예에서 출발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그는 서예로 미술을 시작했고 훗날 조각가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자주 붓을 잡았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동양의 서예가나 산수화가들은 작품에 자신만의 흥취를 실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김종영은 이런 동양적 감각을 바탕에 깔고 서양식 추상조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종영은 60대가 넘어서도 조각을 멈추지 않았지만 부와 명성에는 뜻이 없었다. 조수의 도움 없이 홀로 조각하기를 즐겼기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소형 조각이다. 대규모 공공조각품은 ‘3ㆍ1독립선언기념탑’과 ‘포항전몰학도충혼탑’ 두 개만 남겼다. 전시 예술감독을 맡은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김종영은 조선 사대부의 후손 집안 출신으로 평소 수신(修身)에 충실했던 ‘20세기의 선비’였다”고 말했다. 그가 생전 좋아했다는 목조 자각상에는 세상의 높은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의미로 조각해 온 김종영의 올곧은 표정이 살아 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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