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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한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수익 창출’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군사 정권이 국민들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해 프로스포츠를 만든 특수한 태생 탓이다. 대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 발을 들여 구단을 창단했고, 기업들은 자사의 이름을 부르며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확보하며 무형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프로야구 출범 33년 프로축구 출범 32년째를 맞는 2015년의 상황은 달라졌다. 야구 축구 할 것 없이 모기업의 지원은 줄고 있고 구단들은 ROI(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케팅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 같은 스포츠 산업화 바람 속에 땀 냄새 풍기는 ‘스포츠’와 우아함 넘치는 ‘디자인’, 만날 일 없어 보이던 두 명사는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프로스포츠 관계자들은 이 둘을 어떻게 조합해 시장에 내놓을 지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공자는 30세를 이립(而立)이라 했다.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립을 넘기며 스포츠 산업의 기초를 새로이 확립해가는 프로스포츠계를 향한 전문가들의 애정어린 ‘훈수’를 전한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 학과장을 맡고 있는 최준서(47) 교수, 스포츠 디자인 전문가 장부다(46) 씨, 스포츠경기장 건축 설계 전문가인 정성훈(44) 로세티 이사와 가진 인터뷰를 서술 형식으로 정리했다.
스포츠산업에서 디자인이란 요소는 빠지는 곳이 없다. 유니폼 같은 용품 디자인은(▶관련기사 보기) 말할 것도 없고 웹 디자인이나 포스터 디자인, 패키징 디자인, 경기장의 건축디자인, 경기장 내 광고 영역(▶관련기사 보기)까지 다양한 곳에 디자인이란 요소가 적용된다. 디자인과 머천다이징, 세일즈 능력을 함께 갖춘 융복합 인재를 키워가려는 이유도 이 같은 스포츠산업 시장 변화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이 부분에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아직까지 구단들이 수익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탓도 있었고, 남성 관중이 주 소비층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스포츠란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시장에 내놓아야 할 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요즘 부쩍 스포츠산업이 ‘블루오션’에 비유되곤 하지만 지나친 장밋빛 전망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지금 한국에서 스포츠산업은 진화 중이라는 점이다. 스포츠산업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인재들도 상당히 많다. 현재 프로구단의 젊은 직원들의 대다수가 상당한 열정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문제는 구단 최고 경영진들의 마인드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실무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의 실현을 돕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조가 바뀌기 힘들다면 의사 결정권자의 마인드라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 의사 결정권자들이 큰 바퀴를 움직여줘야 스포츠산업의 진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본다.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경우 구단에 브랜딩 디자인 전담 부서를 설치해 다양한 머천다이징 상품을 내놓아 호응을 얻고 있다.(▶관련기사 보기) 프로축구 전북 현대는 선수에 대한 스토리를 멋지게 활용하고(▶관련기사 보기) 지역 밀착 마케팅을 꾸준히 실천해 호응을 얻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들이 빛을 보기 위해선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경기장을 꾸미고, 광고판을 정비 하고 싶어도 경기장 운영권, 광고 영업권 등을 구단이 갖고 있지 않아 딜레마가 온다. 구단들이 이 같은 한계 탓에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의 스포츠산업 시장에 적합한 세련되고 업그레이드 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단 프로스포츠만의 과제는 아니다. 대한체육회 산하 각급 연맹들도 각 종목을 멋지게 포장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얀 도화지 상태다. 현역 스타 선수나 은퇴 선수 등을 활용해 예쁜 그림을 그려내자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
디자인이 스포츠와 결합되면 그 가치는 더 특별해진다. 우선 스포츠에서만큼은 ‘디자인’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스포츠 산업에서 디자인이란 단순히 ‘예쁜 것’만을 의미해선 안 된다. 엠블럼·유니폼·슬로건 등 구단의 상징물 하나를 디자인 할 때도 그 팀의 철학과 성격, 연고지의 정서(▶관련기사 보기)까지 잘 녹여내야 한다. 스포츠 디자인은 일관된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이자 결실이다.
지금까지 스포츠계에서 디자인 개선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하지만 그것을 산업이라고 인식하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이제 구단들이 수익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시기가 왔고, 수익 창출에 디자인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하지만 ‘각개 전투’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 리그 전체의 정체성이나 통일성을 담아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급 연맹이나 협회에서 리그 브랜드의 통합 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는 출범 초기부터 로고와 캐릭터상품 개발, 라이선스 등을 통합 관리하는 ‘J리그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해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성도 갖췄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예쁘기도 했다. 스포츠 팬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고 싶게 만들었다.
과거엔 스포츠산업의 주 소비층이 남성이었지만, 이제 여성과 어린이다. 상품의 디자인이 투박해도 팀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구매했던 남성과 달리, 여성과 아이들은 디자인은 물론 실용성까지 따지며 구매한다. 마음에 드는 상품이라면 가격이 높게 책정됐더라도 구매에 인색하지 않다.(▶관련기사 보기)
상품을 어떻게 유통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살 수가 없다. 전국민의 거점인 서울역이나 용산역, 고속터미널에 리그 라이선스 상품을 파는 상점을 연다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경기장은 팬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팀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한국은 근래 들어 경기장 신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팬 친화적인 환경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계다. 과거의 경기장 리모델링의 목적이 단순히 유지와 보수에만 있었다면, 지금은 팬들을 만족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수익을 내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인식하는 추세다.
‘공간 활용 능력’은 경기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구단의 미래를 본다면 경기장 내 ‘공간 활용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프로스포츠 경기장은 스포츠라는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장소인 동시에 구단에게 입장권, 스폰서십, 식음료 판매 등의 다양한 수입을 가져다 주는 거점이다. 경기장 건축 디자인은 곧 장기적인 수익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엔 제한점이 있다. 거의 모든 경기장들이 구단 소유가 아니라 지자체나 시설관리공단의 소유라는 점이다. 구단이 사업성을 고려해 경기장을 개조하거나 꾸미고 싶어도 실행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K리그 서울 이랜드FC의 경우 가변석과 컨테이너를 설치(▶관련기사 보기)했다. 아이디어는 물론 좋지만, 궁여지책인 건 분명하다.
스포츠 경기장은 상당히 트렌디한 상품이다. 애초에 완벽한 경기장은 없다. 활용 전략에 따라 꾸준히 리모델링 해 완성형 경기장에 가까워지도록 하나씩 개선해 가는 게 옳다. 그런 차원에서 인천 유나이티드가 라커룸 등 경기장 내부를 새로 디자인 해 가치를 입힌 건 고무적인 방향이다. (▶관련기사 보기)
프로스포츠 경기장을 리모델링을 한다면 조금 더 고려해야 할 공간이 있다. 바로 경기장 출입구에서 관람 공간까지 이동하는 공간이다. 현재까지 일반적으로는 경기 관람 공간만 디자인을 하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관중들이 진짜 소비를 하는 공간은 경기 관람석이 아닌 이동 통로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상품을 구매하는 이 공간들을 쾌적하게 설계하면 장기적으로 구단 수익에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의 건축디자인 트렌드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다.(▶관련기사 보기) 기존에는 관중이 많이 들어와야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좌석 수를 줄이고 그 공간에 다양한 프리미엄을 부여해 가격을 높이고 있는 추세다. 한국에선 프로야구 SK의 바비큐 존이나 kt의 스포츠 펍이 좋은 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최주호 인턴기자 (서강대 정치외교 3)
김연수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 3)
그래픽=백종호 디자이너 jo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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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내 배구단, 안산에서 ‘위안’과 ‘기적’을 말하다
10. 서른 넘긴 韓 프로스포츠, 디자인으로 돈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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