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서울에서 한미동맹과 북핵, 일본 과거사 문제 등 현안을 두루 협의했다. 1년3개월 만에 다시 서울을 찾은 케리 장관과의 회담은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미ㆍ대일 외교 실패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다음달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와 함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등 북한의 심상찮은 정세 등 논의해야 할 중요한 현안도 많았다.
케리 장관은 “한미의 전체적 안보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대북정책에서도 전혀 이견이 없다”며 흔들림 없는 한미동맹을 거듭 강조했다. 중러와 미일 간 대결구도로 동북아 긴장이 높아지고 북한의 도발야욕이 노골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격상된 미일관계 때문에 한미관계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불식한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서 양국이 꽉 막힌 북미ㆍ남북 관계를 뚫을 진전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한 채 압박과 제재 등 기존 강경책만을 되풀이한 것은 실망스럽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유엔결의안이 지난해 통과된 것을 언급하며 “그런 행동이 계속된다면 회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경고까지 했다.
우리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 지금은 한반도 긴장 해소를 위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게 급선무다. 고위 간부들에 대한 잇단 숙청 등 김정은 정권의 취약성을 알리는 신호가 잇따르는 한편으로 핵 능력 고도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어, 북한이 고립과 외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군사적 모험에 나설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서도 케리 장관은 “아베 정부가 무라야마ㆍ고노 담화를 존중한다는 것을 미국은 인지한다”는 애매한 화법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양국이) 미래지향적 해결책을 찾길 바라며 그것이 우리의 정책이고 목표”라고 밝혀 한일 과거사 갈등이 한미일 3각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인식만 부각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미일동맹 강화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라는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인 만큼 우리 외교력으로 미국의 입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반도 주변의 안보지형이 새로운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지렛대를 일정 수준 강화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에서 정부의 전향적 자세가 요구된다. 내달 박 대통령의 방미의 초점도 북한의 도발위협 해소와 안정적 남북관계 유지 방안에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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