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어정쩡한 태도
정의화 의장, 김무성,문재인 대표 등
입법부 주요 인사들은 함께 불러
"박근혜정부 제창 불허 고집 버려야" 법안도 발의
논란을 거듭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올해에도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공식적으로 제창(齊唱ㆍ참석자 전원이 동시에 노래하는 형식)되지 못했다. 정부 주최 공식 기념식에서 제창이 불허된 것은 2009년 이후 7번째로, 박근혜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단상에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단상 아래서는 각자 신념에 맞춰 따라 부르거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특히 기념식장 맨 앞줄 귀빈석에서는 각기 다른 세가지 입장이 뚜렷이 대비됐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와 박승춘 보훈처장은 기립만 할 뿐 입을 굳게 다문 채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어정쩡한 표정으로 듣고만 서 있었다. 반면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일어서서 “사~랑도 명~예도…”로 시작되는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불렀다. 이종걸 원내대표, 전병헌 최고위원 등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제창 불허’에 항의하듯 태극기까지 힘차게 흔들며 행진곡을 크게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부 측과 입법부의 대결 양상이 뚜렷했다. 국회는 진작에 행동 통일을 했다. 2013년 6월 ‘임을 위한 행진곡 5ㆍ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결의한 데 이어 국회 수장인 정 의장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이날 행사가 끝난 뒤에도 “님을 위한 행진곡의 ‘님’은 광주정신이며 광주정신은 반독재투쟁을 한 민주정신이고, 인권과 평화의 정신”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불관언이었다. 국회 결의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국가 기념일에 기념곡을 함께 부르는 제창 의식도 불허했다. 특히 박승춘 처장은 지난 14일 “작사자 행적 때문에 제창 시 또 다른 논란 발생으로 국민 통합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국가보훈처장은 국회 결의안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는 국회 수장의 권고마저 뿌리쳤다. 노래를 작사한 황석영 작가가 방북한 사실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박 처장의 논리였다.
결국 이날 행사장의 기이한 장면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입법부의 선택을 정부가 가로막는 바람에 빚어진 진풍경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진부한 이념의 잣대로 또 한번 광주에 상처를 안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궁지에 몰린 국가보훈처의 ‘색깔론’ 책임은 박 보훈처장의 경질 외에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까지 나서 “보훈처가 부정적인 인식에 편승해 종북 덧씌우기 행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앞장선 박 보훈처장을 경질해야 한다”고 거들고 나섰다.
이번 정부가 언제까지 시대착오적 정책으로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분열의 장으로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 달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가기념일을 주관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자의적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기념일의 기념곡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행사를 마친 뒤 이 법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님’의 광주정신을 우리 국민을 대통합해 내는 통합의 정신, 상생의 정신으로 이제는 발전해 가도록 해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광주=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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