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박 대통령 방미 조율차 방한… 北 정세 급변하자 회담 의제 바꿔
中ㆍ러시아 등 참여 제재 강화 주목
"위안부는 일본군 자행 인신매매", 주체 분명히 하며 日태도 비판
역사문제엔 "대화로 해결" 원칙론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북한의 위협 증대에 따른 대북 압박 강화를 거론하고 나섰다.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로 증대된 북한 정세 유동성 등 최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경고로 보인다. 또 한국의 관심사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관계, 한미동맹 강화 확인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기대했던 시원시원한 답을 내놨다. 6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를 앞둔 한미관계는 한층 탄탄해지게 됐지만 북한 변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경우 한반도 안보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급박한 北 정세 반영, 韓美 대북 공조에 방점
케리 장관의 애초 방한 목적은 6월 박 대통령 방미 조율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5월 들어 동해에서 SLBM 시험을 한 사실이 확인되고, 북한 군부 서열 2위인 현영철이 잔인하게 처형됐다는 첩보가 공개되는 등 북한 정세가 급박해지자 한미 외교장관 회담 의제도 양국의 대북 공조에 방점이 찍혔다.
케리 장관은 이날 한미 외교장관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계속 추구하면서 위협하고 있고 우리에게 가장 큰 안보 우려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영철 숙청 등과 관련해선 “북한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가장 없는 나라”라고도 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직접 언급하며 “(현영철 처형은) 김정은의 행동, 성격과 연계된다”며 “가장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공개 처형이나 숙청을 하고 있다”고 공박했다.
케리 장관은 나아가 “북한의 행동은 점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라며 “제가 박근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고 중국에도 다녀왔지만 다음 조치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추가 압박 가능성도 내비쳤다. 앞서 16, 17일 중국 방문에서도 케리 장관은 북한의 SLBM 시험에 대해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조치라며 비판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15일 김정은 식 공포정치를 직접 비난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북한 압박 쪽에 무게를 싣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미 공조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대북 제재 강화 구도가 형성될지도 관심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이 성 김 6자회담 수석대표를 앞세워 계속 북한 측과 비핵화를 위한 대화 재개를 논의했던 만큼 미국이 협상 재개를 앞두고 미리 대북 기선제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취임 후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 문제, 이란 핵 협상 등에 치중하며 북한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인상이었던 케리 장관이 북한 관련 현안에 적극적으로 발언을 쏟아낸 의도도 복합적으로 해석된다. 케리 장관은 “미국은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며 대북 대화의 문도 여전히 열어뒀다.
케리, 日 과거사 인식 비판 속 韓日 양비론도
케리 장관은 이번 방한에서 일본의 한일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한미 간 입장 차이를 불식시키는 데도 주력했다. 지난달 2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한국 중국과 얽힌 과거사에 대해 직접적인 반성을 하지 않고, 미국은 한일 과거사 갈등에 모호한 입장을 내놓으며 쏟아졌던 비판을 의식한 눈치였다. 정부 당국자들도 케리 장관 방한 전 “미국 측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며 물밑에서 여러 차례 압력을 행사해왔다”고 설명해왔다.
케리 장관은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쓰면서 주체를 분명히 했다. 그동안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두루뭉술 넘어갔던 데서 한국 쪽 손을 들고 일본의 입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또 미일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인한 일본군의 한반도 전장 개입 가능성이 증대된 문제와 관련, “일본과 미국이 국제법에 위배되거나 대한민국이 승인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다만 그는 “한일 양국이 민감한 역사 문제에 대해 자제심을 갖고 대처하고 계속 직접 대화하며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길 촉구한다”며 한일 양비론을 기본 인식으로 하는 미국 측의 한계도 답습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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