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2시 30분(현지시간) 한국의 별들이 제68회 칸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영화 ‘오피스’의 배우 고아성과 배성우, 홍원찬 감독 등이 붉은 융단을 밟고 뤼미에르극장으로 들어설 때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마 감독과 배우에겐 영화를 만든 보람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일 것입니다. 레드 카펫을 걷기 전 얼굴에 어린 설렘과 기대와 환희의 기운은 그들이 이 순간 지구 위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올해 한국배우로는 ‘무뢰한’의 전도연 김남길이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습니다. 20일 오후에는 ‘마돈나’의 신수원 감독과 배우 서영희 권소현이 세계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습니다.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 배우 김고은 고경표는 비공식부문인 비평가주간의 초청을 받았기에 레드 카펫 행사를 열지 못하고 영화 상영 후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났습니다. 칸의 이곳 저곳에서 만난 한국배우와 감독의 얼굴에는 웃음이 늘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제 중의 영화제를 찾았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우들의 칸영화제에 대한 동경은 그들이 칸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더 잘 드러납니다. 칸영화제는 모든 배우들에게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독에게는 항공권과 함께 2박3일을 칸에서 잘 수 있도록 해줍니다. 출연 배우에 대한 대우는 영화제 부문에 따라 다릅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영화들은 공식적으로는 배우에게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대장을 받은 영화의 경우 배우에게는 항공권이 제공됩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분의 ‘무뢰한’과 ‘마돈나’의 전도연 서영희 등은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대된 ‘오피스’의 고아성 등은 항공권을 제공받는다는 뜻입니다.
영화제 측이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하지 않으면 보통 해당 영화의 제작사나 투자배급사가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숙박 장소를 확보하고 비행기 문제까지 해결해줍니다. 하지만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의 주머니가 항상 넉넉할 수 없습니다. 소수 주연급 배우들에게만 칸영화제 참석이라는 혜택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칸을 찾은 어느 한국 배우는 자비(또는 소속사 비용)로 비행기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숙박 장소도 별들의 위세만큼 화려하지 않습니다. 저예산영화로 줄곧 칸을 찾았던 홍상수 감독은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배우들과, 제작사 관계자들과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방이 모자라 감독이나 배우 중 누군가는 소파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칸영화제에 진출한 다른 영화들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배우들은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칸영화제를 찾기도 합니다. 김고은의 경우 2박3일의 짧디 짧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칸에서 맘껏 놀 수도 없습니다. 영화제가 마련한 공식행사와 인터뷰 등을 소화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갑니다. 올해로 칸을 네 차례 찾은 전도연은 “라면을 내가 매우 좋아하는데 칸에 오면 라면에 질려서 돌아가게 된다”며 “워낙 바빠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숙소가 여의치 않고 지중해의 태양을 즐길 여유도 넉넉하지 않은데다 자신의 돈과 시간까지 들이며 배우들이 애써 칸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우들은 언제 올지 모를 칸영화제인데 돈과 일정이 무슨 대수냐는 입장입니다. 연기로 충무로에 발을 디딜 때 누구나 칸영화제를 마음 속에 품게 된다고 합니다. 배우로서의 꿈 중 하나를 이루게 됐으니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석에 10시간 넘게 붙들려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좁은 숙소에서 스태프들과 복닥거리며 지내도 행복한 듯합니다. 역시나 배우들도 칸영화제 없이는 못 사나 봅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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