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SNS)사람’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페이스북ㆍ트위터ㆍ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소셜 스타’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애들 운동시키고 오다가….” 지난 12일 오후 8시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서울 을지로 한 카페로 들어온 개그맨 이승윤(38)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씻고 급하게 오는 길”이라며 그는 연신 머리 모양을 매만졌다. “제가 안 하는 줄 알았죠? 직접 다 관리합니다.”
‘라스트 헬스 보이’는 KBS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을 대표하는 코너다. 단기간(16주) 수십㎏ 다이어트에 도전한 김수영(28)의 감량 폭이 방영 뒤엔 항상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새롭진 않다. 8년 전 이승윤이 2년차 때 처음 선뵌 ‘헬스 보이’도, 4년 전 다시 찾아온 속편 ‘헬스 걸’도 늘 화제였다.
하지만 마지막 편에서야 비로소 ‘헬스’가 정명(正名)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전편들은 건강이 아니라 ‘뷰티’를 위한 운동 아니었나. 비정상의 정상화요, 상식의 재발견인 셈이다. 통찰로 들여다봐야 감춰져 있던 상식이 모습을 드러낸단 건 상식 밖이다. 헬스 보이의 주역인 이승윤은 액면 뒤 정작을 폭로하는 저런 반전 기술 구사에 능란한 개그맨이다.
우보(牛步)로 서른 해나 산 뒤 개그판에 겨우 들어온 그는 알고 보니 준족이었다. 뛰기 시작하자마자 날개 단 헬스 보이가 됐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가 과시적이지만 그의 내면은 로봇과 인간의 이별(영화 ‘터미네이터 2’)이 애달파 울고 후배들을 살뜰히 챙길 정도로 보드랍다. 끝이 시작인 것도, 보여준 게 없음은 보여줄 게 많음과 같단 것도 그는 안다.
그는 못 가진 걸 비관하기보다 가진 걸 믿으며 불가능은 없단 긍정 신앙을 모두 건강해질 때까지 전파해갈 기세다. 만난 김에 서울 을지로 리복 크로스핏 짐에서 운동법도 배워봤다.
준비 운동
Q ‘라스트 헬스 보이’가 녹화 만으로 끝나는 코너가 아니잖나. 일주일이 빠듯할 것 같다.
A 여가가 없다. 눈 뜨면 출근해 애들(라스트 헬스 보이 출연진)과 회의하고 함께 운동한다. 책도 쓰고 있다. 밤에 짬 내서다. 자서전 같은 이야기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잔 게 요지다. 365일 식스팩 갖고 살 순 없고 도달 과정도 고되다. 즐겁긴커녕 예민해진다. 그런 몸 대신 건강을 위해 적당히 먹어가며 운동하면 삶이 활기차다. 지속 가능한 기본 운동법을 담았다.
Q 코너 출연진 체중 변화가 매주 화제다. 종일 후배 챙기는 게 일이겠다. 어떻게 관리하나.
A 항상 붙어 관리한다. 먹거나 운동하는 거 전부. 밤 11시까진 같이 있는다. 못 먹게 하기 위해서다. 운동보다 힘든 게 식욕 참는 거다. 수십 년 습관을 의지만으로 극복하긴 쉽잖다.
Q 라스트 헬스 보이 탄생에 얽힌 얘기 좀 들려달라.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도 있을 텐데.
A 실제 체중이 168㎏인 사람 본 적 있나. 사람 하나 살리기 위해 시작한 코너다. 휴머니즘 그 자체다(웃음). 어느 날 (김)수영이가 찾아와 털어놨다. 자다 수면무호흡증으로 죽을 뻔했다고, 의지가 약해 강력한 동기 부여가 필요한데 헬스 보이처럼 해보면 어떻겠냔 거였다. 떠올려보니 자기처럼 뚱뚱한 할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다며 요절 공포감이 생겼다고도 했다. 제작진도 수영이가 걱정돼 기회를 준 거다. 라스트를 붙인 건 반복 포맷인 데다 얘가 ‘끝판왕’이어서 후속이 의미가 없다고 봐서다. 목표는 두 자릿수(체중)다. 아기가 곧 돌이다. 아내는 내가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거의 다 왔다. 하지만 코너 끝이 진짜 시작이다. 붙어 있는 시간이 적어지는 만큼 유혹은 커질 거다. 유지는 자기가 감당할 몫이다.
Q 데뷔가 늦었다. 개그맨 시험 합격이 서른 때였다. 계기가 있었나. 곡절도 있었을 듯하다.
A 졸업 앞두고 앞으로 뭘 하면 잘할 수 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다 대학 4학년 때에야 개그맨으로 진로를 정했다. ‘캠퍼스 영상가요’란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게 계기라면 계기다. 졸업 뒤 취업 안 하고 소극장에 들어갔다. ‘갈갈이 패밀리’ 에서 바닥부터 시작했다. 박준형ㆍ이수근ㆍ변기수 등 개그맨들 어깨 너머로 배우며 기본기를 다졌다.
Q 연기자 류수영과의 인연이 공개된 바 있다. ‘수영이 살 빼주는 승윤이’라 불릴 만하다.
A 살 빼는 데 일가견이 있나 보다. 대학 전통무예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가장 친하게 지냈다. 헬스 하고 역기 들며 차력 연습하다 살 좀 뺐다. 그러고 보니 날 만든 게 이 동아리다.
턱걸이
Q 방송사 개그맨 공채시험 복수합격자다. 비결이라도 있나. MBC에서 KBS로 옮긴 건 왜인가.
A 합격까지 1년 걸렸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는 편이 아니다. 되레 편안하다. 시험 볼 때도 안 떨렸다. 도움이 된 것 같다. MBC 시험은 경험 삼아 봤는데 붙었다. 본래 목표는 KBS였다. 동경하는 무대는 개그 콘서트였지만 나이가 많아 막차 기다리기가 불안했다.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의 개콘 활동 모습을 보며 꿈꾸던 무대에 서고 싶단 욕심이 살아났다.
Q 늦깎이지만 곧 성공 가도를 탔다. 데뷔한 지 1년 만인 2007년 ‘헬스 보이’가 히트했다.
A 개그맨 되면서 운동을 못하고 생활도 불규칙해지다 보니 몸무게가 100㎏까지 늘었다.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할 때여서 주변의 뚱뚱한 캐릭터를 둘러봤더니 유민상 선배가 있었다. 못생긴 캐릭터도 박휘순 선배가 독보적이었다. 고민하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게 12주 만에 근육질로 변신한 외국인 사진이었다. 국내 첫 실시간 근육 개그 탄생 비화다.
Q 다부진 몸으로 여장을 하거나 못생겼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반전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A 몸을 만들고 난 뒤다. 한 선배가 불렀는데 내가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곧바로 ‘어, 웃긴데’란 반응이 나왔다. ‘씁쓸한 인생’(2009)의 ‘뭉치’다. 이렇게 쉽게 짠 캐릭터가 많은데 ‘나쁜 남자’(2009)도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배우 김수로가 가수 이효리한테 슬리퍼 던지며 ‘오다 주웠다, 신어라’ 하는 데 착안했다.
Q 근육 속에 숨은 실제 내면은 어떤가. 외모처럼 상남자 스타일인가 여성적 면모도 적잖나.
A 보기와 달리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노래 듣다가도 자주 울고 감동도 잘 한다. 중학생 때 영화 ‘터미네이터 2’ 관객들 중 혼자 울었다. 운동시킬 땐 꼼꼼하게 쫀다(웃음).
윗몸 일으키기
‘12주 만에 몸짱 만들기 프로젝트’란 부제가 붙은 ‘헬스 보이’는 이승윤의 출세작이다. 코너 중간 튀어나오는 록가수 김경호의 새된 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운동한 그가 막바지 측정한 체중으로 성과를 헤아리는 식인데, 이 드문 시도가 그에게 준 선물은 푸짐했다. 특히 대중이 그를 기억했다. 이후 4년마다 등장한 속편은 이타적이고 근본적인 쪽으로 진화했다.
Q 회마다 체중 재는 기본 포맷은 같지만 헬스 보이 시리즈의 변화엔 일정한 방향이 보인다.
A 나만의 고유 캐릭터 구축이 헬스 보이의 과제였다면 ‘헬스 걸’(2011)은 여자 후배들을 비만에서 탈출시키는 게 목표였고 라스트 헬스 보이는 사람 한 명 살려보잔 취지에서 만드는 완결편이다. 세 번째여서 식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첫 방송 뒤 응원이 많아 좀 안심이 된다. 살고 싶다며 수영이가 글썽인 눈물에서 시청자들이 진실성과 절박함을 본 듯하다.
Q 심야 후배들과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이 개콘 페이스북에 소개됐다. 진한 정이 느껴진다.
A 자꾸 눈에 밟힌다. 밤 12시 반쯤이면 수영이한테 “야, 냉장고 가지 마”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살 빼는 비결은 몸이 아니라 정신을 컨트롤 하는 거다. “야, 빼” 하며 강압적으로 대하기보다 후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힘든 걸 알아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헬스 보이 하며 쌓인 나만의 노하우다. 고마움을 굳이 표현할 필요 없다. 나도 얻은 게 많다.
Q 이미지가 굳는단 게 좋지만은 않을 성싶다. 더욱이 헬스 보이가 웃긴 캐릭터도 아니잖나.
A 웃기는 건 개그맨의 평생 숙제다. 노력할 거다. 헬스 보이 이미지가 강해 다른 캐릭터가 묻히는 것 같다. 계속 변화를 주고 싶다. 강한 의지가 내 장점이다. 단점은 딱히 뭐(웃음).
팔 굽혀 펴기
Q 이승윤을 떠올리면 헬스 트레이너가 연상된다. 자격증 있나. 운동법은 어떻게 익힌 건가.
A 자격증 없다. KBS 직원 헬스장에서 몸으로 부딪치고 시행착오 겪어가며 익힌 운동법이다. 트레이너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기본 독학이다. 관련 서적들 보며 공부도 많이 했다.
이승윤은 2010년 10월 개그맨 중 처음으로 국내 최대 이종격투기 단체 로드FC가 주최한 대회에 출전해 상대 선수와 접전을 벌였지만 2라운드 중반 코뼈 부상으로 TKO 패배를 당했다.
Q 이종격투기 선수로도 활동했다. 개그맨 1호 파이터다. 데뷔전에서 패했는데 아쉬움 없나.
A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겼냐 졌냐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몸짱’도 복근이 있는지 없는지가 기준이다. 하지만 내면이 건강해야 진짜 건강한 거다. 같은 이치로 승패보다 만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프로 레슬링 선수가 돼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링에 오르는 꿈을 꿔왔다. 서른넷에 그 꿈을 이룬 셈이다. 격투기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싶었다.
Q 후배 이창호에게 “답장 보내지 마라, 아기 깬다”란 메시지 보내잖았나. 잘 크고 있나.
A 어떤 힘든 일이나 시련이 있어도 아기가 날 보고 웃으면 다 끝난다. 정말 예쁘고 행복하다. 내 책 기획자와 3년 전 결혼했다. 만나다 보니 인연이 됐다. 5월 31일이 아들 첫 돌이다.
Q 2012년 결혼 발표까지 트위터를 통해 할 정도로 SNS 소통에 적극적이더니 요즘엔 뜸하다.
A 당시엔 몰랐다. 트위터에 그런 글(“오늘 드디어 상견례날~~ 은근 긴장이~^^; 이제야 결혼이 실감나네.. 근데 뭐 입고 나가지?”)을 올렸는지도. 사랑에 빠져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개그맨 된 뒤 첫 연애였다. 애 태어난 뒤 자연스레 활동이 줄었다. 요즘엔 페이스북을 많이 한다. 개인적인 것들 올리기보단 내 계정을 통해 개콘 영상 공유를 많이 하는 편이다.
Q 본보 온라인 전용 신개념 칼럼 서비스 ‘브런치N스토리’를 통해 칼럼니스트로 데뷔한다.
A 어떻게 살 빼고 찌우는지 들어오는 문의마다 일일이 답하긴 어렵다. 식습관 같은 것들을 전부 알아야 도와줄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칼럼에서 쓰려 한다.
달리기
“운동과 다이어트는 미약하게 시작해야 창대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이승윤은 조언한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하루 세 끼 과식하지 말고 시간 내 하루 30분씩만 빨리 걸어보자. 일주일만 해보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거다. 이게 느껴지면 의욕이 더 생기고 운동에 대한 관심도 늘어갈 거다. 힘들게 운동 시작하면 3일 하다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Q 시즌3을 끝으로 헬스 보이 시리즈가 종료된다. 결산해 보자. 어떤 의미를 남긴 코너였나.
A 이 코너가 3탄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다이어트가 꺼지지 않는 불씨여서다. 늘 사람들의 관심사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이들이 자극 받아 운동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수영이도 이승윤도 하니 나도 할 수 있단 희망을 다들 가졌으면 좋겠고. 한 사람 살리고 사람들한테 재미있게 동기부여 해주잔 취지였는데 모두 건강해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Q 남서울예술종합학교의 개그학과 교수직 제안을 수용했다. 후배 기르는 데에도 관심 있나.
A 제의를 수용한 건 나보다 능력이 좋은 친구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뭘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 서는 공개 개그 성패는 자기 능력을 얼마나 십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강조하는 게 자신감이다. 결국 개그맨 된 뒤 좌우명이 자기를 의심하지 말자다. 의심하는 순간 꿈이 흔들리고 멘털이 약해진다. 꿈이 있다면 계속 열심히 하라 한다.
Q 개그맨 그만둬도 먹고 사는 데 문제 없어 보인다. 건강이나 운동 분야 사업 계획은 없나.
A 없다. 헬스장 관련 동업이나 투자 제안은 많지만 확신 없으면 안 한다. 흔들리지 않는다.
Q 개그맨에 승부를 걸겠단 말로 들린다. 개그관(觀) 같은 게 있나. 어떤 개그맨이 될 건가.
A 아직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단 게 내 강점이다. 더 보여줄 기회가 많이 남은 셈이니까. 재미있는 개그맨으로 정평 나 있으면 얼마나 부담이 크겠나. 나한테 누가 말했다. 근육 개그 창시자라고. 왜 살 빼는 게 개그냐 비난하는 분들 있는데 그 상황이나 과정에서 유발되는 웃음도 다양한 웃음 중 하나다. 새 패러다임 만들었단 자부심이 있다. 전부 만족시킬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과반수는 만족시키는 개그맨이 되도록 애쓸 생각이다.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k.co.kr
김지현 기자 hyun1620@hk.co.kr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k.co.kr
동영상
김태환 PD joki8@hk.co.kr
디자인
백종호 jongho@hk.co.kr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k.co.kr
속기 및 보조
박은진 인턴기자(경희대 경영학과 3)
조한울 인턴기자(한양대 영어영문학과 3)
장소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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