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가라' 말씀 젊은이들 다수 냉소
기성세대 모순 해결 우선하라 메시지
구조개혁 없이 청년 신뢰 얻기 어려워
최근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대학 졸업 특강이 화제다. 그는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다른 직업군과 달리 앞날은 안정적이고 순탄하지만 않고 수많은 좌절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직설적인 충고를 해서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유명 작가이기도 한 서울대 교수 역시 졸업 특강에서 젊은 이들의 분발과 조국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인상적인 강연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옳은 말이나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젊은 이들이 비록 좌절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전적인 정신으로 자신이 하고픈 바를 추구하고 실제적인 노력을 해봐야 결국 이런 과거 경험들이 그들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의미에서 이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좌절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을 해야지 도저히 인내하기 어려운 고통은 자신의 상처가 될 뿐이며,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조그만 성취감도 맛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좌절은 변화의 계기가 되는 개인적 경험이 되지 않고 회의와 분노 그리고 불신을 생산한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하면 안 된다.
물론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젊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전달하고자 의도한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의 시대적인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고 너무나 젊은 이들의 개인적인 책임만을 강조한 듯한 오해에 대하여 그런 측면이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처한 시대적 소명이 너무나 엄중하므로 청춘들의 분발과 노력이 꼭 필요함을 역설하여 큰 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질 자원이 없다. 그래서 사람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최근 출산율이 계속 저조한 상태이다. 게다가 기존의 젊은 이들은 구직과 결혼을 포기한다는 마음 아픈 소리가 들린다. 희망이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다. 노력과 분발을 요구하려면 신뢰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얼마 전 대통령이 나라가 싹 다 비워져도 좋으니 해외 중동지역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많이 진출하게 해보라는 당부의 말씀을 했다. 국내 여건이 녹록하지 않으므로 도전적으로 해외에 취업 자리를 많이 만들어 기회를 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냉소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가 나고 자란 나라 버리고 어디 다른 나라에 가서 취업하라는 소리냐는 것이다. 기성 세대가 근본적으로 국가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 주지 않는 한 어떠한 보완적인 정책 제시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기초적인 신뢰 관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항상 세상에 대한 의심과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가 뒤따른다고 한다. 국가사회의 기존 세대와 젊은이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를 위하고 나를 위하여 돌아간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술 좌석에서만 ‘위하여’를 외칠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저절로 음모론이 탄생하고 불신이 팽배하면 자연발생적인 유언비어와 괴담이 창궐한다.
최근 중동 사스라는 호흡기증후군이 화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괴담에 대해 강력 대응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사실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분명한 의학적 문제에 대해 왜곡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생겼고 이를 일반 대중이 수용하고 전파하였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보건복지 정책 당국의 전염병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와 질병에 대한 공포가 전부가 아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과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위험신호인 것이다. 절박한 시대적 소명에 대한 인식 공유와 근본적인 사회구조 개혁을 외면하고 젊은이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기 어렵다. 청춘이 바로 희망이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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