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열 기준 변경ㆍ늑장 전수조사 등 추가 환자 발생때마다 오락가락
보건당국은 비공개 방침 고수 속 대책이라곤 '괴담 유포 처벌'만
“메르스 발생 초기 안일한 대처가 참사를 불렀다”(의료관계자), “속수무책 정부 대응이 메르스 보다 더 위험하다.”(네티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연일 추가 발생한 데 이어 1일에는 첫 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있는 50대 여성 의심환자가 사망하면서 확산세가 어디까지 갈지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환자 15명이 무더기로 발생한 경기도 소재 B병원이 어딘 지 공개하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지만, 보건 당국은 “공포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다”며 공개 불가 방침을 밝혔다. 이날 사망한 의심 환자도 B병원에서 첫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 당국은 관련 정보를 숨기고 있지만 지방의 한 대학병원은 메르스 발병지역과, 환자 접촉 병원 리스트를 안내한 게시물을 응급실 문에 붙여놓기도 해 관련 정보가 사실상 공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메르스의 국내 유입과 관련한 정부 대응이 총체적인 실패로 드러난 만큼, 지금이라도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 추후 발생할 수도 있는 ‘3차 감염’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메르스 환자 접촉 병원 비공개 논란
지금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메르스 환자는 모두 수도권 거주자로 알려졌다. 그런데 1일 대전 지역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발생하면서 메르스가 전국으로 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 상에는 메르스 환자 접촉 병원 리스트가 사진으로 찍혀 전파되고 있고, 각종 유언비어도 함께 돌고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병원 방문을 꺼리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메르스 발생 지역과 의료기관 등을 국민에게 공개해 해당 지역 주민과 의료인 등 주요 기관들이 충분한 경각심을 갖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익 의원은 “괴담 처벌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잘못”이라며 “밀접 접촉자가 벌써 1,000명에 이르는 등 통제 범위를 벗어난 만큼 이제라도 정보를 공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준욱 메르스중앙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특정 시기를 전후해 B병원에 있던 사람은 다 조사하고 있다”며 “병원을 공개할 경우 다른 기간 동안 해당 병원을 이용한 환자와 병원 종사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확진 환자들에 대해서도 전국 17개 국가격리시설 일부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병원 이름과 지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제로 베이스’에서 격리 대상 전부를 가려낸다는 방침이지만 방문 기록과 역학 조사, 폐쇄회로(CC)TV 분석만으론 한계가 있어 병원과 지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골든 타임 놓쳐
바레인에서 입국한 첫 환자 A(68)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20일만 해도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사람 간 전염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만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었다. A씨의 부인에 이어, A씨와 4시간 동안 2인실에 함께 입원했었던 76세 남성이 양성 반응을 판정 받은 21일에도 보건 당국은 확산세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러다 26일 세번째 환자를 간호한 딸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유전자 검사 대상 의심환자 발열 판단 기준을 38도 이상에서 37.5도 이상으로 낮췄다. 급기야 28일 A씨가 입원했던 B병원의 같은 층 1인실을 썼을 뿐 밀접 접촉이 없었던 71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고서야 해당 병원 이용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실시됐다.
1일까지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 자가 또는 시설 격리 대상자로 분류된 사람은 682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50대 이상 고령자이거나 당뇨, 폐질환, 면역저하질환 등을 앓고 있는 고위험군은 시설에 격리된다. 시설 격리 대상자는 약 240명에 달하지만 격리에 동의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근무하다 발열 증상으로 자가 격리된 병원 직원에게조차 보건소와 질병관리본부는 수일 동안 연락을 취하지 않는 등 허술한 대처가 잇따르고 있다”며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지정 병원 직원들도 대응 매뉴얼이 없어 쩔쩔 매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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