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바이러스 많이 분비하는 입원 초기 관리 실패
보건당국 사후 유전자 분석 위한 국제공조 소극적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급속히 전염된 사례는 전례를 찾기 힘든 ‘슈퍼전파 사건’(superspreading event)이라고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가 집중 조명했다.
사이언스는 2일 “한국의 메르스 사태는 아라비아반도 외부에서 발생한 메르스 감염 중 가장 규모가 크다”며 “과학자들은 어떻게 한 명의 환자가 다수의 2차 감염을 유발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2012년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국가로 유입됐지만 이번처럼 다수의 2차 감염자가 발생하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처음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접촉이 어려운 하부 기도에 감염돼 대인 간 전파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사이언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메르스 피해가 커진 데에는 정부의 늦장 대응이 결정적 원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메르스 감염자들이 확진 판정이 늦어져 장기간 특별 조치도 없었고, 이 때문에 지난달 15~17일 가족과 보건의료 종사자, 치료를 받았던 병원의 다른 환자들 최소 22명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것이다.
독일 본 대학 바이러스학자 크리스티안 드로슈텐은 “환자가 입원하고 증상이 악화되는 발병 초기에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분비한다”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도 이 시기에 사람들을 허술하게 관리해 바이러스가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메르스 관련 자문을 하는 피터 벤 엠바렉은 “메르스 환자를 수백번 접촉한 사람도 발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한국의 사례는 슈퍼전파 사건”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슈퍼전파의 원인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은 “병원에서의 감염 통제 조치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와 먼 친척 뻘인 사스 바이러스의 경우 2003년 치료를 위해 환자의 기도에 튜브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에어로졸(연무질)이 발생, 바이러스가 널리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메르스 환자들도 현재 삽관 치료를 받고 있다. 벤 엠바렉은 그러면서 “입원 후 첫 3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까지는 메르스 급속확산의 원인을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인 A(68)씨가 ‘슈퍼전파자’(super spreader)일 가능성에 주목하는 견해가 많았다. 감염병 확산 과정에서 대개 한 사람이 8명 이상을 감염시켰을 때 그를 슈퍼전파자로 분류하는데, 공교롭게도 A씨가 슈퍼전파자였다는 추론이다.
한국의 메르스 슈퍼전파의 원인에 대해 또 다른 추론도 있다. 환자가 약간 다른 계통의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었거나, 한국인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유독 메르스에 취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슈퍼전파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바이러스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한국 보건당국은 중국의 홍콩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메디컬센터 등 각국 메르스 실험실과 표본을 공유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진행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벤 엠바렉은 “염기서열을 분석해야 최근 메르스 바이러스에 어떤 변이가 일어났는지 볼 수 있지만 표본이 한국을 떠났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홍콩대와 에라스무스 메디컬센터 측도 “서울로부터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 연락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홍콩대 말릭 페이리스는 사이언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한국 정부에 돕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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