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EP 아이돌급 폭발적 반응
취향 다른 멤버들 절묘한 조화
공연 제의 쇄도… 하반기에 엘범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이후 이런 입소문은 처음이다. 지난해 말 첫 미니앨범(EP) ‘20’을 내고 바로 인디 음악계 최고의 신인으로 떠올랐다. 음악 페스티벌 출연 제의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공연만 하면 관객들이 줄을 선다. 지난달 28일 두 번째 EP ‘22’는 음반 판매 순위에서 엑소, 빅뱅, 샤이니, 김준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정규 앨범을 내거나, 단독 공연을 한 적도 없는데 관심은 아이돌급이다.
1993년생 동갑내기 네 명(오혁, 이인우, 임동건, 임현제)이 결성한 밴드 혁오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2일 만난 혁오의 리더 오혁(보컬)은 “첫 EP 내고 별다른 프로모션도 안 했는데 반응이 오는 걸 보면서 앞으로 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덤덤한 대답조차 참 신인답지 않다.
혁오의 음악은 새롭고 독특한 것을 찾는 이들, 소위 힙스터들의 편애를 받고 있다. 혁오의 허스키한 솔 창법에 임동건의 두툼한 베이스, 디스코와 솔, 록, 재즈, 블루스를 오가는 임현제의 변화무쌍한 기타, 이인우의 리드미컬한 드럼은 2015년의 ‘음악 멋쟁이’들이 찾는 새롭고 근사한 패션이다.
한 장르로 규정하기 힘든 혁오의 독특한 음악은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모르던 사이였던 네 멤버가 만나 충돌하고 섞이며 나온 것이다. 대학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오혁이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원맨밴드를 시작한 뒤 한 명씩 끌어 들이며 현재의 혁오가 꾸려졌다. 모두들 중학생 때 이미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을 만큼 탄탄한 실력을 지닌 이들이라 뭉치기는 순식간이었다.
취향은 제각각이다. 네 명 모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다”고는 말하지만 오혁은 디스코와 포크, 이인우는 편안하고 차분한 음악, 임현제는 빈티지 스타일의 솔과 블루스, 개러지 록을 좋아한다. 임동건은 한때 헤비메탈을 연주했다. 그런데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루브 감이 좋은 멜로디. 이인우는 “서로 색깔이 다르다 보니 곡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게 생긴다”며 “아직은 정확히 우리가 어떤 색깔의 밴드인지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작곡과 작사, 편곡은 독학으로 음악을 깨우친 오혁이 도맡아 한다. 중국에서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낸 스물둘의 이 청년은 “가사와 곡의 분위기가 서로 달라 낯설게 반전을 주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얼음땡’ 같은 놀이 이름인 ‘와리가리’는 흥겨운 디스코 리듬인데 가사는 쉽게 다가왔다가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버리는 사람들, 허무한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혁은 앨범 제목의 나이에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가사에 담았다.
“한 번 모여 합주할 때마다 한 곡씩 나온다”는 임현제의 말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쏟아내는 오혁을 향한 기존 가수ㆍ연주자들의 관심도 높다. 오혁은 두 장의 혁오 EP 외에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와 함께 ‘러키 유’라는 EP를 최근 발표했다. 아이유, 장기하, 타블로, 빈지노, 하세가와 요헤이 등은 혁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쉴 새 없이 곡을 만들어 하반기쯤엔 정규 앨범을 낼 만큼 쌓였다. 다음 앨범 제목은 ‘23’. 20, 21일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하는 음악 페스티벌 ‘레인보우 아일랜드’, 내달 24~26일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열리는 안산M밸리록페스티벌 등에서 공연하는 틈틈이 조금씩 완성할 계획이다. “우린 우리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만 좋아하는 음악은 아닐 거라는 확신.”(오혁) 이 말은 이미 사실이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