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ㆍ놀이공원ㆍ영화관 발길 뚝
마트 매출↓… 온라인 매출은↑
생산ㆍ투자ㆍ고용 감소 이어지면
2%대 성장률도 현실화 우려
멈추지 않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세에 주말 대한민국이 얼어붙었다. 갈수록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면서 화창한 날씨에도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주요 여가시설에는 인파가 자취를 감췄고, 경제ㆍ산업ㆍ문화 각 분야에도 여파가 미치는 등 메르스 공포가 우리 사회를 뒤덮는 분위기다.
주말인 6,7일 서울 주요 행락지에는 나들이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주말마다 몰려드는 차량으로 진입로 일대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은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토요일(6일) 오후임에도 평소의 20% 수준인 8,000여명만 공원을 찾았다. 그나마 놀러 나온 가족단위 입장객들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잠시 구경하다 일찍 귀가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은 한모(43)씨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불안해 1시간도 안 돼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서둘러 돗자리를 접었다.
송파구 롯데월드는 평소 대비 40%가량 입장객이 줄었다.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탑승이 가능한 바이킹의 대기시간 알림판에는 주말 내내 ‘5분’이라는 숫자가 고정돼 있었다. 6일 LG트윈스와 SK와이번스의 야구 경기가 펼쳐진 잠실구장도 8,000여명만 들어 차 2만명 넘게 몰린 지난 주말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아내와 경기장을 찾은 김모(56)씨는 “모처럼 팽팽한 경기가 진행됐지만 귀가 수단인 지하철에 사람들이 몰려들까 겁이 난다”며 양팀이 5대5로 맞선 9회초 자리를 떴다. 박근찬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팀장은 “아직까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나 (메르스 진원지인) 평택과 가까운 수원구장의 경우 예매취소율이 높아지는 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말 유동인구가 많은 송파ㆍ강남ㆍ중구 일대 영화관 역시 매진행렬을 이어가던 ‘매드맥스’가 모든 시간대에 좌석이 100여석 가량 비어 메르스 위력을 실감케 했다. 6일 전국 영화관을 찾은 관객수는 68만7,872명으로 지난주와 2주 전 토요일 대비 각각 19.2%, 23.5% 감소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집중된 경기 지역은 타격이 더 커 극장 관객수(13만8,000명)가 전 주 토요일보다 26.9% 줄었다.
예정된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계 행사도 줄줄이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시민 5,000여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상암동 월드컵공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2015 하이서울 자전거 대행진’은 7일 예정에서 무기한 연기됐고, 6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계획돼 있던 현충일 기념행사는 취소됐다.
영화배급사들은 관람객이 급감하자 신작 영화 ‘연평해전’의 개봉일을 10일에서 24일, 내달 2일 개봉 예정인 ‘뷰티 인사이드’의 개봉을 8월 이후로 늦췄다. 또 이문세, 전인권, 김장훈 등 유명 가수의 콘서트 및 대형 공연장의 뮤지컬, 음악회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공연계에도 메르스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특히 어린이 대상 뮤지컬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물 경제에도 서서히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유커) ‘깃발부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던 서울 명동은 주말 내내 추석과 설 등 명절 때보다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커들이 즐겨 찾는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박모(28ㆍ여)씨는 “개장 두 시간만 넘겨도 최소 50명이 넘는 유커들이 구매를 했는데, (오늘은) 여태 고작 3명이 매장을 둘러보고 간 게 전부”라고 말했다. 유커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10여대의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던 백화점 앞 풍경도 사라졌다. 백화점 관계자는 “메르스 감염환자가 경유한 수원ㆍ대전지점의 경우도 지난 주말 대비 고객 수가 10% 정도 감소했다”며 “상품권 증정 행사에도 고객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경우 1~6일 매장 매출이 12% 감소하는 대신, 온라인 매출은 59.5% 폭증하는 등 메르스 여파가 소비 패턴까지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메르스발 소비 위축이 생산과 투자,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 2%대 성장률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이 아예 외출을 삼가는 등 메르스 충격이 지속될 경우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보다 소비 위축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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