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5년차 과장, 두 아이 아빠
내 인생 가장 큰 재산은 가족
많이 버는 것보다 서로 이해 노력
삶 버겁지만 무뎌지지는 않을 것
언젠가 작가 되려고 오늘도 습작
뉴스의 홍수 시대.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들은 대부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다. 2015년 오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오늘의 한국&한국인을 통해 평범한 대한민국, 평범한 한국인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한강을 북에서 남으로 건너는 매일 아침 지하철 출근 행렬에 황규환씨가 있다. 입사 15년차 과장, 두 아이 아빠, 노부모의 장남. 그의 면면은 우리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440만 40대 근로자의 평균 조건(44세, 대졸, 사무종사자, 4인 가족, 자가보유, 가구 월소득 500만원)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보통사람이다.
1972년생 서울토박이.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다. 쪽가위를 들고, 좁은 마당을 메운 옷가지의 실밥을 따던 어머니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수고에 턱없이 모자라는 월급을 공장에서 받아 몇 번이고 세시던 모습이나, 그런 날엔 여동생과 신나게 먹을 수 있었던 통닭의 맛도. “우리 어머니 세대는 돈과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삶은 지금도 내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지금의 직장(한국야쿠르트)에 입사했다. 마케팅, 홍보 부서를 거쳐 교육 업무까지 사람 대하는 일이 많은 부서를 두루 거쳤다. 신입 시절, 기타 연주와 그림 실력을 동원해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재미있게 교육한 일이 화제가 되면서 10년 넘게 사내 행사 사회를 도맡고 있다. 여러 해 회사 사보에 만화를 연재한 덕에 ‘황작가’로도 통하는 그는 퇴근길에 직장 동료, 친구, 업무 관계자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이는 애주가다.
가족은 황씨가 직장 이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그루터기다. 사내 연애를 통해 결혼한 아내와 아홉 살, 다섯 살 아들은 그가 꼽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재산”이다. 사회 생활에서 좌절을 느낄 때, 남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들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가족과 눈높이를 맞추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황씨의 좋은 아빠론이다. “애들은 애들답게 크면서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 최고”라는 지론 아래, 주위를 보며 아이들 교육에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 아내를 말리고 있다. 부부는 육아를 위해 올 여름부터 맞벌이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아내가 재취업 1년 만에 다시 ‘경단녀’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어린 자녀에겐 더 많은 부모 손길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한다. 황씨는 “회사마다 보다 계획성 있게 업무를 배분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일과 가정 사이에서 보다 균형 있는 삶이 가능할 것 같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어느덧 40대 중반, 황씨 역시 전에 없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만약 내가 오늘 해고 통보를 받는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변화가 찾아들까 생각해볼 때가 있어요. 굉장히 갑갑하죠. 준비가 돼 있어야 안 갑갑할 텐데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들을 잘 건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더욱 불안하다. 하나둘 켜지는 건강 적신호 역시도.
시시때때로 버거운 삶이지만, 황씨는 ‘무뎌지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당한 일에 격하게 반응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같이 아파할 줄 알았던” 젊은날 감각을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선거일마다 꼬박꼬박 투표하고, 월급 일부를 몇몇 단체에 기부하고, 연초부터는 매일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일기에 적는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의 감성에 도움을 주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오늘도 글쓰기와 그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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