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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죄의 표식' 통렬하게 속죄한 지식인

입력
2015.06.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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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채만식(사진)이 1950년 6월 11일 별세했다. 그는 2002년 민족문학작가회 등이 공동 발표한 ‘친일문학인 42인’과 09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남겼다. 확인된 그의 친일 물증은 소설과 칼럼 등 14편. 증산과 징병 독려, 전사자 미화 등 주제는 다양하다.

41년 매일신보에 기고한 ‘시대를 배경하는 문학’에서 그는 쇼와(昭和)유신을 시대정신으로 천명하며 “신체제하의 조선문학의 유일한 진로”는 “신체제에 순응하는 방향이 있을 따름”이며, 그것은 “조선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제국의 한 개 지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친일문학론 임종국 저, 민족문제연구소)

자전적 중편 ‘민족의 죄인’은 48년 10월~49년 1월 문예지 ‘백민’에 연재됐다. 채만식은 자신의 분신이라 할 만한 주인공 ‘김군’을 통해 친일 기자로 살게 된 계기와 정황, 활동 과정을 치열하게 그렸다(고백했다). 아내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의 입으로 쏟아낸 추궁과 반성의 문장들은 가히 통렬하다.

“왜놈들의 주구가 되어 가지구, 온갖 아첨 다하구, 비윌 맞추구 하면서 순진한 청년 어리석은 백성을 모아놓고 구린내 나는 아굴지루다 지껄인단 소리가, 소위 예술가니 평론가니 하는 놈들은 썩어빠진 붓토막으로 끼적거려 낸단 소리가, 황국 신민이 되라 하기,(…)징용에 나가라구 꼬이고 조르기.” “아무리 정강이께서 도피하여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번 살에 묻은 대일 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나의 두 다리에 신겨진 불멸의 고무 장화였다. 씻어도 깎아도 씻겨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식’이었다.”(‘민족의 죄인’중. 태평천하, 어문각)

24년 단편 ‘새길로’로 등단한 채만식은 30년대 ‘레디메이드 인생(단편)’ ‘태평천하(중편)’ ‘탁류(장편)’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풍자와 비극적 리얼리즘의 한 진경을 이뤘다. 물론 그는 친일작가였다. 하지만 허다한 동류와 달리 자신의 허물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죄의 표식’을 스스로 수용한 드문 반성인이었다.

폐결핵을 앓던 만년의 그는 한 제자에게 원고지 20권만 보내달라는 편지를 썼다. 글을 쓰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일평생을 두고 원고지를 풍부하게 가져본 일이 없네. 이제 임종이 가깝다는 예감을 느끼게 되는 나로서는 죽을 때나마 한번 머리 옆에다 원고용지를 수북히 놓아보고 싶은 걸세”(차남 채계열이 쓴 ‘아버지 채만식’) 그의 유언은 상여 없이 “널 위에 누이고, 그 위에 들꽃을 가득 덮은 후 활활 태워”달라는 거였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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