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할때까지 엄마는 욕심 버리고 기다려줬죠"

입력
2015.06.10 16:01
0 0

"아이들도 조종당하는 것 싫어해, 부모 뜻대로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하루 한끼 이상은 꼭 '식탁 대화' 안아주기 등 정서적 공유 노력

7일 오후 서안정씨 가족이 모여 일주일간 집 화장실 벽에 붙여 놓았던 '먹이사슬에서 새가 사라진다면?' 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서씨 가족은 주말이면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가족독서시간을 갖는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7일 오후 서안정씨 가족이 모여 일주일간 집 화장실 벽에 붙여 놓았던 '먹이사슬에서 새가 사라진다면?' 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서씨 가족은 주말이면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가족독서시간을 갖는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대한민국 10대들은 야간자율학습과 학원 때문에 부모와 대화를 나눌 시간도, 가족애를 느낄 겨를도 없지만 서안정(41)ㆍ정순진(42)씨 가족은 사뭇 다르다. 부부의 세 딸들은 입버릇처럼 “우리 가족으로 태어나서 정말 좋다. 이 각박한 사회에서 언제나 든든하게 힘이 돼 주는 가족이란 제도가 있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 가족은 사교육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아빠와의 놀이, 엄마와의 식탁대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책 읽기 시간 등이다. 그럼에도 세 아이는 모두 인천북부교육청과 인천대에서 운영하는 수학ㆍ과학영재원에 합격했다. 이 가족이 강조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의 기다림’, ‘가족과의 대화’에 대해 들어봤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한 공부

지난 2일 방문한 인천 부평구 서씨 가족의 집. 거실과 아이들 방은 책으로 가득했다. 영어 그림책부터 세계의 명화 추천 서적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빼곡한 책장이 거실에만 6개가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자 학교를 마친 세 딸이 돌아왔다. 학원에 가지 않는 첫째 연수(15)는 취미로 쓰고 있는 소설을 마무리하겠다고 했고, 둘째 현지(14)는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난 뒤 학교 숙제를 하겠다고 했다. 요즘 미술을 배우는 셋째 하윤(12)이만 학원에 다녀온 뒤 점토 만들기를 할 예정이었다.

이 계획은 아이들이 스스로 짠 것이다. 어머니 서안정씨는 책에서 ‘자기주도적 성향’이라는 단어를 본 후 아이들에게 성적을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사람은 원래 자립적인 성향이 있어 남에게 조종당하는 걸 싫어하는 존재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엄마인 저도 사춘기를 겪어봤지만 아이는 내 뜻대로 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 명망 있는 직업 갖기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욕심을 버리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재원에 다니게 된 것도 아이들의 선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연수는 이미 3학년 때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영재원 시험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었다. “수학, 과학에 딱히 관심이 없는데 왜 다녀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딸의 말에 엄마도 “알겠다”고 답했다.

3년이 지나자 연수가 먼저 영재원에 다녀보겠다는 말을 꺼냈고, 인천국제고의 인문영재교육원을 수료한 뒤 지금은 인천북부교육청 수학영재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연수는 “집에서 공부를 강요하는 사람은 없지만 각자의 꿈에 따라 스스로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면 무얼 공부할지 선택한다”고 말했다.

셋째 하윤이는 공부 욕심이 많았다. 아이가 지칠까봐 교내 수학경시대회에 나간다는 걸 말렸더니 “나한테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서씨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마다 각자의 성향이 있는 걸 새로 배웠다. 결국 하윤이는 원하던 대로 교내 대회에 몇 개씩 참여한 뒤 지쳐버렸고 서씨는 “공부를 잠깐 놓고 미술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윤이가 ‘꿈 발표대회’에서 “삽화를 함께 그리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다.

둘째 현지는 올해 1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온 뒤 자막 없이 뮤지컬을 이해하고 싶다며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엄마가 프랑스어 학습 CD를 구해와 사교육 없이 독학하는 중이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잉 사교육은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 시키려는 부모의 대리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은 스스로를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주체적인 아이의 삶을 위해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해 정서적인 지지를 계속 쌓아야

아이들의 선택을 인정해주는 것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정서적인 지지다. 서씨 가족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식탁 대화’를 해 오고 있다. 하루 한 끼 이상은 꼭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초등학생때 동화 속 공주이야기로 시작한 식탁 대화는 요즘은 신문기사, 책, 학교 생활 등의 주제로 폭이 넓어졌다.

주말엔 온 가족이 모여 독서 시간을 갖는다. 다같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1시부터 탁자 위에 과일이나 과자를 두고 3~4시간 동안 각자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서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나도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며 “아이들이 푹 빠져 읽는 만화책도 함께 읽어보면 어른인 내게도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이에게 “만화책은 공부에 도움이 안 되니 다른 책을 읽으라”는 식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서씨는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생각도 점점 커지기 때문에 엄마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땐 그 자체로 대화를 나누면 된다”고 덧붙였다.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 아이들 각자와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땐 매일 저녁 한 명씩 붙들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 아버지 정순진씨는 잦은 야근을 해야 했지만 “어릴 때 정서적으로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집에 들러 아이들을 30분이라도 보고 가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 때문에 정씨는 최근 전북 전주로 직장을 옮겨 ‘주말 아빠’가 됐지만 사춘기의 아이들과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조흥식 교수는 ‘가족 간의 시간 회복’을 강조했다. “아이의 시간을 학원에 뺏기니 가족이 공유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 가족 단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가족간의 대화는 부모에게도 힘이 된다. 세 아이를 기른 경험을 담아 책을 쓰고 강연활동을 하는 서씨가 빡빡한 일정에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첫째 딸은 이렇게 물었다. “엄마 안아줄까?” 안아주는 건 이 가족에게 하나의 약속이다. 누군가 “안아달라”고 말하면 그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체온을 통해 위로를 전한다. 서씨는 “부모 역시 아이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존재”라고 덧붙였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