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때 중남미 출국
'마이웨이 국정운영' 논란 시끌
아베와 방미 성과 비교도 부담
여야 모두 "잘한 결정" 환영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메르스로 등 돌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미국 공식방문 일정 전체를 연기하는 강수를 두었다. 메르스 컨트롤타워 부재가 상징하는 정부의 서투른 대응이 박 대통령의 통치 능력 논란으로 번지면서 지지도를 끌어내리는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의도다.
청와대와 정부는 지난 주말부터 방미 일정 변경을 고민해 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까지 미루는 것은 부담이 큰 만큼 닷새로 잡힌 일정을 2,3일로 줄여 정상회담 등 핵심 일정만 소화하고 돌아오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포함한 방미 일정을 통째로 연기하기로 결정했고, 청와대는 미국과 협의 등을 거쳐 10일 오전 연기를 최종 확정했다.
박 대통령의 선택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인 4월16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했을 때와도 사뭇 다르다. 당시 박 대통령은 여론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익과 외교 관례 등을 명분으로 출국을 강행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의 상처를 보듬는 모습을 보이고 참사 수습 과정에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듣지 않아 ‘마이웨이 국정운영 논란’으로 소란스러웠다.
외교적 격식과 한미관계를 중시해 온 박 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 일정을 전격 연기한 것은 메르스로 인한 민심 이반이 그 만큼 심각하다고 본다는 뜻이다. 여권 관계자는 “세월호는 이념 논쟁이 결부돼 정치 공방으로 비화한 사안이었던 반면 메르스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 박 대통령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를 미국이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논의 과정에서 우리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청와대가 연기를 최종 결정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6일로 예정돼 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시급한 현안 의제가 별로 없었던 만큼 정상회담 연기가 실질적 손실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과 성과가 새로운 밀월관계를 확인하고 돌아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4월 방미의 그것과 비교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를 추진할 방침인 가운데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인지 등이 한미관계를 확인하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야는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를 환영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최근 메르스 상황과 국민 안전에 대한 걱정을 감안하면 잘한 결정”이라고 평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중대 결심을 한 만큼 메르스 사태 극복에 국력을 모아야 하고, 한미 간에 외교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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