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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유럽의 난민 기억상실증

입력
2015.06.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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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유럽인이 점령 혹은 추방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한 제1차대전 이후 국제체제는 뿌리 뽑힌 이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한세기 뒤, 지금 다른 난민 위기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 절망적인 이들에게 안전한 대피처를 제공할 힘을 가진 것은 유럽이다. 그러나 유럽은 위급한 대응에 거듭 실패하고 있다. 올 초 3만8,000명 이상이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오려 했다. 그러다 1만8,000명이 숨졌다. 2013년 전체 사망자 수의 두 배다.

실망스럽게도 많은 유럽인들은 한세기 전 유럽이 견뎌야 했던 것과 아주 유사한 이런 인류애적인 위기상황에서 더 이상 어떤 난민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 빨리 과거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더 나쁜 것은 일부 유럽인은 우리가 잊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민족국가의 정체성 운운하는 포퓰리즘 정당들이 이런 정서를 부추긴다. 이들은 이런 이동으로 유럽 경제, 노동시장, 문화가 위협 받는다 주장한다. 그런 수사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 알기 위해 굳이 한세기 전을 되돌아 볼 필요도 없다.

이런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은 선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유엔 난민위원회에 따르면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려는 이들 가운데 최소 절반은 전쟁과 살육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다. 국제이주기구는 에리트리아, 잠비아,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시리아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했다. 이들 국가는 시민들이 망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기는 난민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사정이 나아질 조짐은 없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불안정, 폭력은 제2차대전 이후 전혀 줄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충돌이나 살육 때문에 고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을 보호할 법적 의무를 갖고 있다.

유럽은 이민의 부담을 져야 하는 유일한 지역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도 아니다. 난민 열 중 아홉은 가장 가까운 나라로 가거나 경계지역에 머문다.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센터는 8만2,000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자타리가 만약 도시라면 요르단 최대 도시가 된다. 인구 450만 레바논에는 111만 6,000명의 난민이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올해 2만명 난민을 쿼터에 따라 유럽 28개국에 안착시키는데 실패한 정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많은 유럽 국가가 난민을 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페인과 그리스가 수용한 약 4,000명은 요르단이나 레바논에 비하면 알량한 수준이다. 쿼터 합의는 유럽 국가들의 부담을 줄여준다. 주요국의 난민 정책 차이는 난민 숫자 차이로 직결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이 지난해 유럽에 온 난민 3분의 2 정도를 수용했다.

인신매매조직이 거대한 무덤으로 바꿔버린 지중해에 유럽이 등을 돌려선 안 된다. 유럽 지도자들은 포퓰리즘과 고립주의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법적, 도덕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 자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대규모 수색구조작전 지원 노력을 지중해 국가들뿐 아니라 모든 유럽이 해야 한다.

유럽은 내전 중인 국가들이 그 상황을 극복하도록, 그 나라 국민의 복지가 증진되도록, 경제가 번영하도록 도와야 한다.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EU)은 성실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남쪽 이웃들과 호혜 조약을 체결해 이 문제에 간여해야 한다.

난민들의 요구 뒤에는 인간의 비극이 있다. 폭력, 공포, 상실 같은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유럽에 도달하는 게 아니다. 싸움과 살육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인은 지난 세기 살육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다. 그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난민 위기에 응답해야 한다. EU의 가치가 국경 너머로 퍼져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공동외교안보정책담당

번역=조태성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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