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부부 보름새 함께 참변… 부모 잃은 4남매 망연자실
“멀쩡하시던 부모님을 보름 사이 두 분 모두 하늘로 떠나 보내면서 임종도 못한 불효자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지난 3일 아버지(82)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떠나 보낸 데 이어 18일 어머니(83)마저 같은 병으로 잃은 길모(59)씨는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길씨의 아버지는 천식과 고혈압 등으로 대전 건양대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 3일 숨졌다. 그리고 다음날 메르스 최종 확진(36번) 판정을 받았다.
며칠 뒤 아버지를 간호하던 어머니마저 메르스 확진(82번) 판정을 받고 충남대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이날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메르스로 보름 사이 부모를 모두 떠나 보낸 것이다. 보건 당국은 길씨 부모가 건양대병원에 입원했던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다 감염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남매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감염판정을 받자 바로 격리 조치돼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다.
지난 13일 격리조치가 해제되면서 집안일을 추스리려 했으나 입원해 계신 어머니 때문에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8일 어머니가 확진 환자로 격리된 이후 뵙지 못하게 됐고,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기도뿐이었다.
그는 의료진으로부터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터라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날 새벽 1시 27분께 휴대전화 벨이 울리며 병원 전화번호가 뜨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들은 전화기에서 어머니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오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길씨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자식들이 지켜보지도 못한 채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며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자식들이 어떻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겠느냐”며 울먹였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죽음도 주위에 제대로 알릴 수가 없었다. 사촌들에게도 아버지를 화장한 다음날에야 알리고 찾아오지 말라 했다. 혹시나 감염이 될까 하는 걱정에서다.
부모를 잃고도 주위사람의 전염을 우려할 만큼 이해심이 큰 그였지만 보건당국의 행태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유족에게 위로는커녕 시신을 ‘세균 덩어리’로 여기고 신속하게 화장할 것만을 요구하는 당국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길씨는 “보건당국은 메르스에 감염된 사망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지침만을 전하며, 정부의 질병관리 소홀로 멀쩡하던 사람이 돌아가신 데에는 사과 한마디 없다”며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했다.
부모의 갑작스런 사망에 4남매가 아무 일도 할 수 없자 이를 보다 못한 사촌들이 장례절차 등 수습에 나서고 있다.
길씨의 사촌동생(56)은 “보건당국에서 큰어머니의 신분증과 휴대전화 등 유품에 대해 소각 운운하며 처리방법을 묻는 전화를 받고는 화가 치솟았다”며 “국가의 방역체계가 무너져 국민이 희생을 당했는데 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이준호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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