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기획자·프로듀서역 소중한 경험
소속 가수들에게 자율성 주고, 작곡가도 중시 아낌없는 지원
빅뱅·2NE1 이을 히트상품 아쉬워… 화장품·외식사업 확장은 긍정적
시가총액 6826억, SM 앞질러
이수만과 양현석은 가요계, 나아가 한국 대중문화산업을 이끄는 양대 축이지만 추구하는 길과 성과가 구분된다.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이수만이 아이돌 기획·양성 시스템을 확립한 선구자라면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양현석(45)은 ‘아티스트 아이돌’을 추구한다. YG 소속 뮤지션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두터운 해외 팬을 보유한 빅뱅과 세계적 히트를 친 싸이의 성공은 빅마마, 에픽하이, 악동뮤지션 등 개성과 음악성이 뚜렷한 풍부한 뮤지션 풀에서 나온 결실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은 그 시절 서태지에 가린 인물이었다. 해체 직후 1996년 힙합 그룹 킵식스를 내놓고 제작자로 나섰을 땐 댄스 그룹 영턱스클럽으로 차트를 정복한 이주노에 밀렸다. 하지만 20년 후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서태지의 영광은 과거의 것이고 이주노 역시 추억의 인물이 됐지만,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거물이 된 양현석은 날로 세를 키워가고 있다. 빅뱅을 통한 해외시장 개척에 이어 싸이가 미국 팝계의 유명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과 계약을 맺은 뒤 2NE1 씨엘의 미국 시장 진출도 일사천리로 이뤄지고 있다.
2006년 데뷔한 빅뱅의 성공과 함께 YG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해 2007년 115억원이던 연간 매출액이 2009년 357억원, 2012년 1,000억원대를 돌파하더니 지난해 1,560억원을 기록했다. 불과 7년 사이 13배 이상 뛴 것이다.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이 아직 SM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시가총액(18일 현재 6,976억원)은 오히려 앞서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험은 제작자 양현석의 밑거름이 됐다. 양현석은 “서태지가 음악을 만들 때 안무와 패션 등을 맡으며 기획자나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양현석의 한 측근은 “양현석의 완벽주의는 서태지 이상”이라며 “음반이나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절대 내보내지 않는데 여기엔 서태지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석은 사관학교처럼 전문적 교관의 강도 높은 트레이닝으로 신인 가수를 배출하는 SM과 대조적으로 소속 가수에게 자율성을 주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도록 한다. 이런 분위기는 ‘YG패밀리’라는 말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또 양현석은 가수만큼이나 작곡가ㆍ프로듀서를 중시해 원타임 출신의 테디를 비롯해 페리, 초이스37, 리디아, 마스터우 등 재능 있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와 전속 계약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빅뱅의 지드래곤도 마찬가지다. YG 출신의 한 가요 제작자는 “프로듀서들에 대한 애착이 많은 덕분에 YG에서 완성도 높은 음악이 계속 나올 수 있었다”며 “아티스트 중심의 회사이기에 빅뱅도 계속 재계약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SM에 비해 소속 가수와 갈등이 적은 것도 이런 이유다.
양현석이 뮤지션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싸이다. 대마초 사건과 병역비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착하고 건전한 모습으로 바뀐 싸이에게 양현석은 “원래 모습 ‘싸이코’ ‘또라이’로 돌아가라”고 주문했다. ‘강남스타일’의 전대미문 흥행에 양현석의 공이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대학 한국예술학과 교수는 “양현석은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소속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하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 콘셉트를 잘 잡아낸다”고 말했다.
미디어의 흐름을 읽는 눈도 빨랐다.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인기가 급락하고 케이블 채널의 영향력이 커지자 그는 케이블 채널과 손잡고 소속 가수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엠넷과 함께 제작한 ‘빅뱅 TV’ ‘2NE1 TV’ ‘위너 TV’ ‘믹스 앤 매치’는 주인공들을 단기간에 스타로 만들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점유율이 높은 특정 인터넷 연예매체를 골라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양현석의 생각이다.
양현석에겐 운도 따랐다. 한류의 유행과 유튜브의 등장은 YG 소속 가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줬다. 일본에서 동방신기가 이뤄낸 입지전적인 성공 덕에 빅뱅은 훨씬 수월하게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고,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K팝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까닭에 K팝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던 싸이가 YG채널을 타고 이례적인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빅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점은 YG의 한계다. 빅뱅이 YG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7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SM이 주력 그룹인 동방신기 외에 엑소와 샤이니,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갖춘 반면 YG에는 빅뱅의 뒤를 이을 그룹이 없다. 지난해 5인조 그룹 위너가 데뷔한 데 이어 7인조 그룹 아이콘이 올 여름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 외에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빅뱅과 2NE1의 뒤를 이을 만한 히트 상품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속 가수들이 교통사고나 약물 문제 등으로 자주 구설에 오르는 것도 숙제다. 빅뱅의 대성과 승리는 교통사고로 홍역을 치렀고 지드래곤은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소속 가수 관리와 위기 대처 능력이 아쉽다”고 했다.
YG는 위너와 아이콘을 스타로 만들어 회사의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한편 차승원, 구혜선, 최지우 등 기존의 연기자들 외에 최근 유병재, 안영미 등 코미디 작가와 개그맨을 영입하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신사업 추진에도 열심이다. 지난해 광고대행업체를 인수해 YG플러스로 이름을 바꾼 뒤 홍콩 소재 화장품 제조사인 코드코스메를 인수했다. 글로벌 명품 업체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산하 펀드인 L캐피털로부터 610억원을 투자받기도 했다. 화장품 브랜드 문샷과 패션 브랜드 노나곤 관련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홍익대 앞 주점 삼거리포차에 이어 최근 식당 삼거리푸줏간을 연 양현석은 노희영 전 CJ 고문을 영입해 YG푸드를 설립하고 외식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중국 IT 기업 텐센트와 전략적 업무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중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YG의 이 같은 사업 확장에 대해 증권가는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창권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리스크 요인이지만 아이콘, 위너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이를 해소할 것이고 패션, 화장품 등 신사업과 2대 주주인 LVMH의 시너지에 기대감이 높다”고 전망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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