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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 그게 진짜 용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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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 그게 진짜 용기일까

입력
2015.06.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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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부족해서 불행한게 아니다, 진지하게 살면 충분'

자아 상실에 대한 불안감 위로, 심리학자 아들러 신드롬 일으켜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 발행)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대형서점의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출간 이래 내내 맨꼭대기를 지키며 40만부 가량 팔렸다. 한국에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던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으로 알려지면서 아들러 또는 용기를 내세운 책이 쏟아졌다. 인터넷서점에서 ‘아들러’를 검색하면 이 책 이후 나온 책만도 30종쯤 뜬다. 아들러 자신의 저작도 있지만, 대부분 아들러 심리학으로 풀었다는 자기계발서다. ‘상처받을 용기’ ‘벼랑 끝에 설 용기’ ‘버텨내는 용기’ ‘늙어갈 용기’ ‘나와 마주서는 용기’ ‘포기하는 용기’ ‘인생에 지지 않을 용기’ 등등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는 책들이다.

열등감에 빠진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된 이 책에서 철학자는 말한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라고.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며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는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치 있는 존재’라며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결국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은 ‘긍정’이다.

‘미움 받을 용기’가 돌풍을 일으킨 배경으로 출판평론가 장은수씨는 ‘끊임없이 자기 고백을 강요하는 투명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꼽는다. ‘용기’ 시리즈의 인기는 “한없이 연약해진 자아의 겉면을 호두껍데기처럼 단단히 다져보려는 안타까운 몸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짜 용기일까.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분석해 블로그에 쓴 글에서 그는 아들러식 용기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진짜 자아를 지키는 것은 심리학이 아니라 존재론으로의 전회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사회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일본어 원서는 2013년 11월 나왔다. 아들러 심리학 전문가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인터뷰 전문 작가인 고가 후미다케가 함께 썼다. 출간되자마자 아들러 열풍을 일으켜 2014년 베스트셀러 1위였고 올해 상반기에도 일본아마존에서 종합 2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은 ‘사토리 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의 정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사토리는 깨달음 혹은 득도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절망 또는 체념에 가깝다. 노력한다고 현실이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성공해서 인정 받는 건 진작에 포기하고 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행복에 안주하는, 그리하여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사토리 세대를 분석한 책)이 사토리 세대다.

한국의 청년 세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환 위기 이후 최고의 청년실업률에 대학을 졸업해도 실업자 아니면 신용불량자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노력하라는 말은 희망고문에 가깝다.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며 결과가 어찌 되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그 용기는 극히 개인적이고 내향적이어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맥락의 정치적 결단과는 무관해 보인다.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하긴 하지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얻는 방법으로 권할 뿐이다. 그런 자존감이라면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거나 국제구호기구에 기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딱 거기까지다. ‘미움 받을 용기’가 주는 위로가 허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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