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기치 내걸고 80년대 정치문학에 대항한 문학동네
은희경·김영하 등 스타 배출 불구, 정실 비평·문단권력화 함정에 빠져
문예지·등단·문학상·교수 연결고리, 그들만의 자급자족 시스템에 갇힌 채
활력 잃은 문단은 대중과 고립의 길… 베스트셀러 명단서 한국문학 실종
“한국문학은 지금 국악계의 전철을 밟고 있다. 사회, 대중으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문단 사람들조차 끝난 지 오래인 줄 알면서도 죽은 자식 불알만 만지는 형국이다.” (중진 소설가 A씨)
‘아무도’ 한국문학을 읽지 않고, 누가 뭘 써도 알려지지 않는다. 주요 문학상의 수상작가도 대중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조정래의 ‘정글만리’와 정유정의 ‘28’ 등이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10위권에 포진했던 2013년 이래, 한국문학은 이 차트의 100위권에서도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다.(표 참조) 한국문학의 오랜 침체의 원인으로 그간 문학 장르의 쇠퇴라는 시대적 조류가 주로 언급돼왔지만, ‘신경숙 표절 논란’ 이후 출판과 비평, 언론이 조성한 한국문학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례사 비평의 흥망성쇠
한국문학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 흔히 등장하는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은 90년대 문학의 등장 및 성립과 떼놓을 수 없다. 격려와 상찬의 덕담비평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비평의 본령이자 주류가 된 것은 문학동네가 문학장의 판도를 바꿔놓기 시작한 90년대부터였다.
신진작가를 격려하고 고무하기 위한 주례사 비평은 초기 순기능을 갖고 있었다. 신경숙 문학으로 대표되는 일상의 재발견과 내면성의 탐구는 90년대 문학을 앞선 세대와 구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탈정치화라는 문학의 새로운 사명을 가장 활기차게 수행했던 출판사는 1993년 설립된 신생 출판사 문학동네였다. 80년대까지 한국문학을 장악한 양대 에콜이었던 리얼리즘의 창비와 모더니즘의 문학과지성은 치열한 견제와 비판으로 왕성하게 문학 담론을 생산해온 공로가 있었으나, 많은 작가들을 짓누르는 억압기제이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 아래 새로운 문학을 내세우며 등장한 문학동네는 신진작가들의 숨통을 틔워주며 활력을 불어넣었고, 기등단 작가인 신경숙뿐 아니라 은희경, 김영하, 전경린, 조경란 등 스타작가들을 쏟아냈다. 상업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시장에서 거둔 성과도 혁혁했다. 2000년대 초 평론가들이 주례사 비평과 문학권력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단 외부로 축출되다시피 하며 패배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활력 이후의 시기에도 이 방법론이 비평의 주류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특히 문예지가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업계지 속성을 띠는 특성으로 인해 자사에서 출간된 작품에는 과도한 의미 부여와 상찬이 주어지는 경향이 있었고, 종종 상품 선전ㆍ홍보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후 한국문학이 본격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비판은 평단과 언론 모두에 부담스러운 과업이 되었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주례사 비평은 작가들로 하여금 오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며 “비판이 없으니 독자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그 안에서 독버섯이 피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급자족의 고립된 섬, 문단
사정이 이런데도 자정의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뭘까. 소설가 A씨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제도인데 바꿀 이유가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등단, 원고 청탁, 문예지 편집위원, 문학상, 대학교수 임용 등 모든 시스템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형태로 갖춰져 있다. 이 틀 안에서만 문학이 생산되고, 인정받는데 어떻게 새로운 문학적 비전이나 창작의 동기가 가능하겠는가.” 그는 “글 쓰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문학동네와 창비에 작품을 발표하고 문학상 받는 게 목표인 상황에서 심사위원인 문학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문학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소장 문학평론가 B씨도 “평론가들 태반이 이름 좀 알려져 문예지 편집위원이 되고 나면 대학에 자리잡을 생각만 한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평론을 해봤자 구설에만 오르고 논문 업적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활기 있게 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대학교수가 된 젊은 평론가들이 평론은 일년에 한두 편 쓸까 말까 하며 담론생산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문예지 원고 청탁과 문학상 심사 등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하기보다 적당히 이름 알리고 욕 안 먹는 게 우선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물 작가의 표절 시비를 제기한다는 것은 업계 퇴출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견제하는 외부의 눈이 없어지며 문단은 더더욱 권력화하고 있다. 지난해 창비는 자사가 주관하는 문학상 세 개를 모두 자사에서 발행한 작품에 수여해 구설에 올랐다. “아무리 평가할 만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눈치보기도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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