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프로듀사’가 막을 내렸다.
스타 PD(서수민, 표민수)와 스타 작가(박지은), 여기에 진짜 스타들(김수현, 공효진, 아이유, 차태현 등)이 모인 이 드라마는 탄생부터가 화제였다. 나영석 PD가 “프로듀사는 어벤저스”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시청자인 내 입장에선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다. ‘예능국에서 만드는 드라마’ 컨셉은 이미 tvN에서 ‘응답하라 시리즈’가 써먹어서 성공한 것이고, 금-토 저녁 시간대 편성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가 먼저 했던 파격 편성이다. 게다가 9시15분에서 10시50분(실제 방송시간)까지 애매하게 걸쳐진 편성은 경쟁사 프로그램 시청률을 조금이나마 갉아먹어 보겠다는 편법 같았다. ‘공영방송이 시청률 내보겠다고 앞뒤 안 가리고 막 달려든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이 아주 강했다.
방송 초반에도 딱히 눈길이 가진 않았다. 방송사 예능국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더니 신참 PD가 일본어로 범벅된 방송 용어를 배우고, 방송국 고위 관계자들이 대형 연예기획사와 인기 스타에게 쩔쩔 매는 에피소드 정도가 나올 뿐이었다. 그 정도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 알지 않을까.
결국 이 드라마에 탄력이 붙은 건 ‘방송국 안에서 연애하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서도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다.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란 별명이 무색하게도, 공효진이 김수현에 비해 너무 나이 든 티가 났다. 드라마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리고 예쁜 아이유를 두고 김수현은 왜 나이 먹은 공효진을 좋아하는 거지?
하지만 놀랍게도, 회를 거듭해서 볼수록 줄거리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용이 탄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그저 온전히 ‘김수현의 힘’ 때문이었다. 결국은 이런저런 여러 가지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고 몰입이 되지 않는 상황을 김수현과 공효진의 매력과 연기력으로 뚫어버린 것이다.
‘프로듀사’를 보면서 김수현의 ‘마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일단 김수현은, 연기를 잘 한다.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했다. 베테랑 연기자 차태현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한다면, 김수현은 그 대척점에 있다. 정말 진지하게 연기를 한다.
김수현이 맡은 백승찬 PD라는 캐릭터는 사실 그닥 매력포인트가 없다. 실생활에선 어리바리하지만 지고지순하게 여자 선배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정도로는, 요즘 시청자들 눈을 사로잡기엔 어림도 없다. 그런데 김수현이 하니까 눈이 가더라는 거다. 김수현은 ‘상대 여배우를 향해 진심을 담은 눈빛과 목소리를 보내는 연기’에는 가히 국내 일인자다.
두 번째로, 김수현과 상대 여배우와의 ‘케미’에는 독특한 공식이 있다. ‘김수현을 상대하는 여배우는 기(氣)가 아주 강하거나 한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케미가 터진다’는 것이다.
과거 ‘드림하이’의 수지는 연기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눈 부시게 예뻤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도 마찬가지다. 둘 다 비주얼의 ‘한 방’이 대단했다. 여기에 전지현은 연기력이라는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결과는 말 그대로 초대박이었다.
반면 ‘해를 품은 달’에서의 한가인은 김수현과의 기싸움에서 밀린 안타까운 케이스로 기억한다. 김수현 옆에서 여배우들은 웬만한 미모 가지고 대적하기가 힘들다. 김수현의 얼굴이 유난히 작은데다 동안이라서 여배우가 비주얼에서 막심한 손해를 본다. 천하의 한가인도 그랬다. 그리고 ‘프로듀사’ 공효진도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초반에 손해를 보던 공효진은 그걸 연기력으로 뚫고 나갔다. ‘로코의 여왕’ 다운 저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순간 공효진과 김수현의 ‘케미’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막판 드라마가 재미있어졌다. 만일 백승찬 PD를 다른 남자배우가 했다면? 아마도 KBS 예능국은 흥행참패로 ‘멘붕’에 빠졌을지 모른다.
김수현 못지않게 공효진의 저력도 놀랍다. 공효진이 왜 ‘로코의 여왕’일까. 어떤 내용, 어떤 상황이든 관계 없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 시청자들이 공효진에게 완벽한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신디 역할을 한 아이유에게 더 정이 갔다. 다 가진 것 같지만 실상은 외롭고, 짝사랑에 속앓이 하는 톱스타 캐릭터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대로, 김수현은 상대 여배우도 그 기(氣)가 대등해야 ‘케미’가 생기는 배우다. 만일 김수현이 아이유에게도 마음으로 주고 헷갈리게 만드는 쪽으로 드라마가 진행됐다면, 나는 TV를 꺼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영리한 스타 제작진은 그래서 김수현과 공효진이 드라마 내내 ‘썸’을 타게 만들다가 결국 마지막 회에서야 상식적인 ‘사랑의 작대기’를 완성(차태현과 공효진이 이뤄지는)하게 했는지 모른다.
‘프로듀사’는 솔직히 말해서 ‘그토록 쟁쟁한 스타급 제작진이 모여서 만든 작품에 이 정도로 신선함이 없나’라는 생각이 든 드라마였다. 과도한 PPL(사랑고백의 매개체였던 판다 인형은 경악스러웠다)이나 뻔한 러브라인, 오랜 친구로 지내던 남녀 간의 사랑과 우정 사이, 여자 선배를 연모하는 순정남, 거기에 실제 방송국이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약간의 신선함. 이런 정도의 장치로는 ‘어벤저스’라는 수식어가 아깝다.
하지만 결국 그런 ‘뻔한 구도’를 뚫은 게 김수현과 공효진의 힘이었다. ‘프로듀사’를 보면서 든 느낌을 표현하자면 이렇다. 구태의연한 야구팀 단장이 이름값만 갖고 감독과 선수들을 모아놓았는데, 모래알처럼 대회 초반 헤매던 팀이 선발 김수현의 노히트노런과 4번 타자 공효진의 홈런으로 결승전에서 기어이 승리를 따내는 걸 지켜본 기분.
방송 칼럼니스트
프로듀사
KBS 2TV 매주 금, 토 저녁 9시 15분
예능국 안에서 펼쳐지는 관계자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시시콜콜 팩트박스
1) 프로듀사는 KBS 예능국에서 제작했다. 잘 알려졌듯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 ‘아이리스’의 표민수 PD, 그리고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가 뭉치면서 화제를 모았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7.1%(닐슨코리아)였다.
2) 프로듀사의 ‘씬스틸러’로 자리매김한 김선아(김다정 작가 역할)는 과거 ‘응답하라 1997’, ‘막돼먹은 영애씨’, ‘방송의 적’에 나왔다. ‘방송의 적’을 열심히 봤던 나는 김다정 작가가 나올 때마다 ‘응구 나왔네’라고 생각했다(이거 본 사람들만 공감 ㅎㅎ)
3) 프로듀사의 PPL로 사용된 크눌프출판의 책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등 세트도서는 번역 표절 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문학동네는 자신들의 번역을 표절했다며 해당 출판사 및 번역자를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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