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트위터에서는 “한국문학은 지루하고 수준이 낮아 더 이상 읽지 않는다”는 독자들의 거친 언사에 문단 관계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한국문학 논쟁’이 일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왜 한국문학을 읽지 않을까. 익숙하고 정겨운 언어로 지금 여기의 삶을 그려내는 모국어 문학을 외면하고, 생경한 지명과 인명이 넘쳐나는 번역작품만 읽는 이유는 뭘까.
대중과 가장 접촉면이 넓은 장르인 소설이 극도의 부진을 겪는 이유로는 한국 소설 특유의 ‘이야기 부재’가 꼽힌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탄탄하게 구축한 단편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세계 수준을 상회하지만, 역으로 여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양질의 장편이 생산되지 않는다. 문장만 있고, 세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 쏠림은 한국문학의 고질병으로 오래 전부터 문제제기가 있었고 장편을 진흥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도 도입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주요 문학상의 상당수도 단편으로 심사대상을 국한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수상작 대부분이 단편이다. 노벨문학상 100년 역사에서 단편작가가 수상자가 된 건 2013년 앨리스 먼로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단편은 문학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맹위를 떨치고 있다.
당대 사회에 대한 총체적 형상화에 실패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작금의 한국 문학을 지배하는 것은 “미문에 대한 강박”이라는 게 문단 안팎의 중론이다. 종종 ‘문창과 스타일’이라는 비아냥이 따르는데 실제로 활발하게 작품을 펴내는 작가들 대부분이 문예창작과 출신이다. 비(非) 문학 전공자는 김인숙(신문방송학) 김영하(경영학) 정유정(간호학) 배명훈(외교학) 심윤경(분자생물학) 장강명(도시공학) 정도니, 종 다양성이 매우 취약하다. 문창과에서 기존 문법에 충실한 소설을 배운 후 바로 등단한 작가들이 많고, 이들이 생산해내는 미문의 단편이 문학상 대부분을 석권하며 순문학의 본령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비(非) 문창과 출신의 한 소설가는 “묘사 중심의 미문이 좋은 문학이라는 도그마가 문창과 출신을 중심으로 위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국에서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이 도그마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스릴러나 추리소설에서 재능을 보이는 후배들도 통속문학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미문에만 목을 메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주의와 문학주의의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돼 있으니 장르소설에서도 탄탄한 기량의 대형작가가 나오지 않는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신경숙 사태에 대한 단상’에서 “문학이 자기계발서보다 판매가 안 되는 시대, 이 시대는 자본의 중층적 힘에 문학이 매몰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문학이 이야기의 힘으로 시대의 진실을 포획하고 발화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문학을 즐겨온 일급의 보통 독자가 하는 지적에 문단이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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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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