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명 몰린 난장판 되돌리고 싶어
당시 경험 살려 웨딩사업 시작
원빈·이나영 결혼식이 대세 될 것
2년 넘게 목소리를 잃었다. 1998년 목에 이상이 와 어려서부터 꿈꿨던 가수 활동도 포기했다. 절망의 나락을 걷다 배우 채시라와 결혼하고 택한 길이 웨딩사업이다. 처음에는 천덕꾸러기가 따로 없었다. 사업 시작 후 약 3년 동안은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주위에 돈을 꾸러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4년이 지나 김태욱(45) 아이패밀리SC 대표를 만나러 지난 4월 영국에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김 대표를 ‘한국의 혁신 벤처기업가’로 여기고 취재하러 온 BBC 기자였다. “IT와 네트워크를 접목해 결혼시장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이유다. 김태욱은 지난 2일 방송된 비즈니스 프로그램 ‘CEO 구루(Guru)’에 한국인 CEO로는 처음 출연했다. 제프 이멀트 GE 회장과 세계 최대 유기농푸드 체인 홀푸드마켓 존 맥키 대표 등이 출연한 프로그램이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영국을 비롯해 해외에는 결혼 준비를 업체에 맡겨 하는 시스템이 없어 흥미로워했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김태욱은 살면서 겪었던 불편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채시라가 너무 바빠 결혼식 준비를 도맡아 했다는 김 대표는 기준 없는 ‘고무줄 가격’과 일일이 발품 팔아 준비하는 과정의 불편함을 몸으로 느꼈다. 김태욱은 “당시 웨딩 시장이 10조원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유통과정이 너무 엉망이라 이를 체계화하면 큰 가능성이 있겠다 싶더라”고 웨딩 사업에 발 들인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결혼준비 인터넷 원스톱 서비스다. 직장 생활로 바쁜 예비 부부들이 인터넷에서 결혼식장부터 메이크업 예약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일이다. 문제는 협력 업체 구하기와 가격정찰제였다. 김 대표는 “처음 가격을 공개하자고 했다가 미친놈 소리 들었다”며 “유통을 투명화하지 않으면 영세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수없이 설득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태욱이 업체에 강조한 건 “당신의 결혼 상품을 고객에 팔아드린다”였다. 김태욱은 “업체에 신뢰를 주기 위해 우리는 플랫폼만 되고 나중에 영향력이 커지더라도 절대 결혼 관련 상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아직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공생 전략’으로 김 대표는 현재 1,000여 개 웨딩 상품 관련 회사와 협력 관계다. 네트워크가 커진 덕분에 고객도 첫 해 150쌍에서 지난해 1만 5,000쌍으로 늘었다. 거래액은 첫 해 10억원 정도에서 지난해 약 600억원으로 불어났다.
“18살에 가수가 되겠다고 가출”한 김 대표는 “10년 넘게 했던 밴드 활동이 조직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4살부터 대구에서 대학생 형들과 밴드 활동을 했는데 이때부터 매니저 역할을 했고 소통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채시라 얘기를 묻자 김 대표는 “사업이 어려울 때 한 번도 불안한 내색하지 않고 뒤에서 지켜봐 준 듬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집 안에서 채시라는 전형적인 주부다. 아이의 유치원 체육대회 계주 달리기에 참석해 악착같이 뛰어 1등을 차지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김태욱이 그런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서 되돌리고 싶은 게 바로 “결혼식”이다. “최악이었죠. 4,000명이 몰려 주례 단상 무너지고 난장판이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식장에 제때 들어오지도 못했어요. 누군가 아버지를 사칭해 식장에 들어가 경호원들이 막았다고 하더라고요. 결혼식을 다시 하게 된다면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정말 작은 결혼식을 할 겁니다. 우리 둘만의 신혼 여행이 아닌 가족 여행을 양가 어른과 함께 떠나 정도 쌓고요.”
김 대표는“앞으로는 원빈ㆍ이나영 부부 같은 두 사람의 의미를 담은 작은 결혼으로 결혼 풍속이 바뀔 것”이라며 육아와 가족여행까지 아우르는 ‘가족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BBC가 김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하며 붙인 부제는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이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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