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보도, 위험성 강조 불구 제목들 자극적
국회법 개정안 보도, 청와대 비판도 같이 해줬어야
재창간 지면 개편, 새로 태어났지만 임팩트 약해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 6월 회의가 1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와이즈타워 18층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일보 기사의 독자 권익 침해 여부를 살펴보고 편집에서 개선할 점 등을 조언하는 독자권익위는 이날 회의에서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국회법 개정안 논란 보도를 평가했다. 재창간 선포 이후 한국일보 지면 전반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회의에는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권광중 위원장을 비롯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 김남두 스타마크에이전시 사업부장, 주부 정희수씨, 학생 윤여진(경희대) 변은샘(가톨릭대)씨 등 독자권익위원들과 한국일보에서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진성훈 편집국 국차장이 참석했다. 논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변은샘=메르스 보도에서 제목이 자극적인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더 빨리 퍼졌다거나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얘기는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제목이 아닌가 싶다. 지면 개편 후 1면에 매일 실리는 메르스 현황표는 좋은 선택이다. 1면의 기사 요약도 중요 기사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해주어 좋았다.
윤여진=‘메르스 감염 삼성병원 의사 뇌사’ 오보에 대해 사과문을 냈지만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사과문에서 ‘다각적인 취재’라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감염병 등에 관한 보도에서는 복지부 출입기자단 등이 만든 ‘감염병 보도준칙’에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을 경우 단정적인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국회법 개정 관련 사설에서 "개정 국회법 조항은 대법원의 심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반론이 있다. 국회사무처는 사법부의 통제가 재판으로 넘어온 경우만 가능하며, 재판 대상이 아니면 행정 위임 여부를 입법부가 판단할 수 있다는 반론을 폈다. 이런 점을 사설은 반영하지 않았다.
김남두=바뀐 기업이미지통합(CI)은 좋아 보인다. 중요한 내용을 1면에 배치하고 왼쪽에 목차를 정리해준 것도 보기에 좋다. 그러나 개편 이후 지면 내용은 실망스럽다. 초기 단계에서 메르스 사태가 별 거 아닌 듯 다뤄 여파를 간과했다. 또 메르스 사태에서 직접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해 언급할 사안이 많은데 ‘정부’로 대신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적었다. 황교안 총리 청문회 기사를 보면서도 꽤나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한다는 식의 내용이 주류였던 것 같다. 중요한 이슈인데 속보를 쓰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주한미군 탄저균 관련 사안이 대표적이다.
최창렬=CI를 바꾸고 사옥을 옮기면서 새로 태어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국일보가 지향하는 중도라는 가치는 어정쩡한 중간이 아닌데 최근 몇몇 사설에서 중도이면서 날카로웠던 면모가 무뎌져 보였다.
15일자 ‘야당, 정의화 수정안 수용하는 게 나아’사설의 경우 전반적인 내용에는 동의하나 청와대 비판을 같이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물리적인 중도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분명한 논거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에는 반대 논리가 있다.
‘뇌사’ 기사에서도 혼선이 있었고, 같은 날 삼성내과과장이 국회에서 발언한 부분은 너무 적게 다뤘다. 또 그 날 정치면에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기사를 너무 작게 다룬 느낌이었다. 15일자에서 1면 톱기사가 ‘삼성병원 부분폐쇄, 의료혼란 번진다’였는데 사진은 슬로바키아 구급차에 한국인이 격리되는 것이었다. 사진과 기사를 반드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아쉬웠다. 또 지면 앞쪽에서 메르스를 다루다가 갑자기 맨 뒤에 배치된 사회면 기사에서 또 다시 메르스 기사가 나와서 집중도가 흐트러진다.
전체적으로 기사 가치가 있는 것들이 너무 작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었다. 호되게 질타해야 할 부분에서는 평이하게 가 한국일보답지 못한, 중도답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CI 바뀌면서 신문은 예뻐졌는데 내용이 두루뭉술해지고 오피니언 페이지에서도 전체적인 흐름과는 동떨어진 칼럼이 실렸다. 칼럼도 어느 정도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현안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13일자 시론 ‘아마존이 우리의 미래일까’의 경우 너무 동떨어졌다. 또 ‘세계는 왜’라는 코너에서도 ‘유럽의 난민 기억상실증’을 다뤄 생뚱 맞았다.
권광중=기사나 제목에서 한자 혼용을 두고 의견이 나뉘지만 적절히 한자를 사용하면 제목만으로도 기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을 주기 때문에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제목을 더러 보는데 ‘전국이 메르스 포비아’ 같은 경우 ‘포비아’가 대중적인 외국어인가 의문이다.
국회법 개정과 관련해 5월 30일자 ‘법조계, 대체로 위헌 소지 없어’기사는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몇 명 법조인 견해를 일반화한 ‘성급한 결론’이었다. 또 사흘 후 사설에서는 “위헌 논란 벗어나기 어렵다”고 썼다.
국회의장의 중재안대로 ‘요구’를 ‘요청’으로 고치면 ‘강제한다’는 의미가 없어지거나 약화되는가, 국회의장이 의결 내용과 의미를 고칠 수 있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2009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안이 의결된 경우 법률안의 조문이나 자구ㆍ숫자, 법률안의 체계나 형식 등의 정비가 필요한 경우 의결된 내용이나 취지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리가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률안의 실질적 내용에 변경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헌법이나 국회법상의 입법 절차에 위반된다.
정희수=아이 키우는 엄마이고 남편이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하는 것이 메르스 현황과 관련 속보다. 한국일보에서 매일 1면에 현황을 알려줘서 좋았다. 그런데 메르스 초기에는 국내 유입과 관련해 별 것 아니고 독감처럼 지나갈 것이라고 했는데 다음날 바뀌어 환자가 발생했고 가족이 격리되어야 한다고 나왔다. 하루 만에 뒤집어진 것이다. 뇌사 보도가 뜬 순간 엄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민감해 하는 시기에 뇌사라는 말을 섣부르게 사용해 신뢰도가 떨어졌다.
한국일보에서 미스코리아대회를 주최해서 그런지 미스코리아 관련 내용이 너무 많다. 지역 선발 내용이 줄을 이어서 본 대회까지 이 내용을 얼마나 더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이 이에 관심이 많은지도 의문이다. 처음에는 사람들면에 나왔다가 사회면에 나온 날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사진 아래 성희롱 관련 제목이 달려 굳이 이렇게 편집을 해야 했나 의문이 들었다. ‘신상순의 시선’에서 예전 민주화운동 당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과 요즘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비교했는데 좋았다.
지평님=재창간 선포 이후 유럽 신문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CI 변경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다. 외견상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편집에서 제목을 뽑을 때 너무 ‘나이브’하다는 점이다. 모든 면 톱기사의 임팩트가 약하다. 지면의 제목을 뽑을 때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메르스 ‘뇌사’관련 기사가 나오고 나서 처음엔 안타깝다기보다 ‘쌤통’이라는 댓글과 반응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의사를 욕하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한편 박씨 가족들은 박 시장이 스트레스를 줘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오보도 문제이지만 의사와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환자 가족이 그렇게 말을 했다 하더라도 자극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저 문장을 꼭 넣어야 했나 싶다. 이 점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없어 관성적인 한국일보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 있는 삶’이라는 재창간 기획물은 더 오래 할 줄 알았는데 5회로 끝났다. 역량 있는 기자들을 투입해 좀 더 캠페인성으로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라도 이런 기획을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장기 연재하는 게 파급효과가 클 것 같다.
진성훈=슬로바키아 사진이 어울리지 않았다거나, 시의에 맞지 않는 칼럼이 많다는 것, 기사와 사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한자 병기는 낯선 한자의 경우 주제목 아래 최대한 병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족이 있는 삶’의 경우 짧았던 느낌이 든다. 좋은 기획은 장기기획이 되도록 하겠다.
이계성=메르스 뇌사 관련 오보는 유감이다. 병원 측이나 보건복지부 얘기를 더 주의 깊게 들었어야 하는데 섣불렀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사과문 게재도 너무 작지 않았나 싶다. 정정기사는 눈에 띄게 할 필요가 있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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