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술자리였다. 독립영화인들이 하나 둘 모였다. 뒤늦게 합석한 한 배우가 인사를 건넸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는 독립영화계에서 주연급이다. 어떤 이가 그의 ‘지각 등장’ 이유를 묻자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정규직을 구할 수 있는데도 언제 출연 제의가 들어올지 몰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린다”고도 했다. 일상은 고단하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그때까지 그가 출연한 주류영화는 ‘밀양’(2007)이었다. 사진으로만 잠깐 등장하는 역할이었다. 그는 간혹 상업영화에 단역으로 나오고, 주로 독립영화 주연으로 모습을 보인다. 살림살이가 폈을 것 같지는 않아 스크린에서 그를 만날 때면 배우의 길을 단단한 마음으로 걷고 있기를 바라곤 한다.
이 배우는 그래도 나은 경우다. 독립영화에서조차 단역을 전전하는 배우가 허다하다. 열망과 열정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삶의 냉혹한 명제는 배우에게 유독 더 잔인하게 적용된다.
간혹 무명배우들이 이메일을 보낸다. 공들여 찍은 사진과 이력이 첨부된다. 캐스팅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자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지푸라기라도 되는가 싶어 마음이 매번 무겁다.
2년 전쯤에는 오십 줄의 한 남성이 자신을 알리는 글을 보내왔다. 쉰이 넘어 첫 출연한 독립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이였다. 남다른 이력에 호기심이 생겨 그에 대한 기사를 찾았다. 1978년 한 주간지가 개최한 신인배우 공모전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얼떨결에 ‘배우’가 됐고 직후 다른 인생 길을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뒤늦게 다시 찾아온 배우의 삶을 그는 끈끈하게 붙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소나무가 될 수 없는 잡풀의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고 지난 22일 차가운 몸으로 발견됐다.
할리우드 고전 스타 록 허드슨(1925~1965)은 배우가 되기 전 트럭운전으로 밥벌이를 하다 주말이면 영화사 앞에 트럭을 몰고 나가 서있었다고 한다. 혹시 제작자나 감독의 눈에 들 수 있을까하는 바람에서다. 뒷날 성공했기에 아름답게 묘사되는 일화 중 하나다. 가난한 무명배우들에게 마냥 인고하라고 할 수만은 없다. 국회에서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돼 3,500명에게 105억원을 지원하는 예산까지 책정됐으나 정작 집행은 미뤄지고 있다. 작은 물질적인 도움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힘이 됐으면 좋겠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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