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도로 한 가운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선다. 뒤 따르던 차들이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차는 꼼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겨우 차문을 열자 차 주인은 말한다. “갑자기 눈이 보지 않아.” 그 후 그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눈이 멀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내용이다.
또 다른 도시 서울. 2015년 5월4일 중동에 출장 갔던 한 남자가 귀국 후 일주일 뒤 열이 나기 시작했다.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그는 3일 동안 40여명의 환자와 함께 지낸 후 폐렴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와 같은 병동에 있던 30대 남자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우린 이들을 메르스 환자 1번, 14번이라 부른다. 숙주가 된 이들은 대중에게 메르스를 전파한다.
다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시 당국은 사회ㆍ정치적 측면을 고려해 원인이 밝혀질때까지 눈이 먼 사람은 물론 그들과 접촉한 모든 사람들을 정신병원에 격리시키기로 결정한다. 격리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시 당국은 “실명한 자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족들이 자가 격리시켜야 한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2015년 서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보건 당국은 “환자와 2미터 이내, 1시간 이상 밀접한 접촉이 있어야만 바이러스에 감염 된다”고 설명했지만 6월1일 25번 여성 환자가 사망하자 대중들은 메르스 공포에 휩싸인다.
소설에서 정신병원에 강제 격리된 눈먼 자들은 이성을 상실한다. 식량공급이 되지 않아 굶주리고, 오물에 뒤덮이고, 빈대에 물린 이들에게 남은 것은 식욕과 성욕밖에 없다.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이 굶어 죽기를 내심 바란다.
대한민국에선 사망자가 속출했고, 격리에 응하지 않은 의심ㆍ확진 환자도 생겨났다. 집을 빠져나와 지방의 골프장에 가거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지 못해 걸쇠를 부수고 통제된 진료소를 벗어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던 환자도 나왔다.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의료기관 의료진에 대한 신상털기와 ‘낙인 찍기’ 도 확산됐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유일하게 눈 뜬 사람이 있다. 처음 눈이 먼 남자를 치료한 안과의사의 아내다. 함께 격리된 그녀는 눈먼자들의 노예가 될 수 있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눈먼자들과 연대해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도시에 대응한다.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대한민국은 어떤가. 병원은 이익에 눈멀고, 보건당국은 국민안전에 눈감고, 대중은 누가 메르스 환자인지 눈을 부라린다. 우리는 지금 매일 아침 ▦확진자 ▦사망자 ▦격리자 수만 세면서 메르스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보다 더 큰 재앙이 와도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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