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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 사기범죄는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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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 사기범죄는 호황

입력
2015.06.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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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심리지수 낮을수록 증가

발생 건수 4년 사이 17% 늘어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는 39%나

저금리에 IT기술 발달도 한몫

거짓말로 교묘하게 남을 속여 돈을 가로채는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범죄발생 통계를 보면 사기범죄는 2010년 20만3,799건에서 지난해 23만8,643건으로 1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건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전체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1.4%에서 13.4%로 높아졌다. 특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전화 한 통 안 받아본 사람이 없다’는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 범죄는 2010년 5,455건(피해액 553억원)에서 지난해 7,635건(974억원)으로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야 쉽게 말한다.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텐데 왜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당하고 나서야 ‘아차’ 싶은 사기범죄. 도대체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얼어붙는 소비자심리, 기승 부리는 사기범죄

일단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여건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기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 지갑에 있는 돈을 내 지갑으로 가져오는’ 범죄. 먹고 살기가 퍽퍽할수록 사기범과 피해자 모두 어떻게든 한몫 챙겨야 한다는 조바심과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심리가 사기범죄를 부추기고, 피해자에게는 사기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라는 해석이다.

경제불황과 사기범죄 발생 사이의 연관성은 소비자심리지수와 사기범죄 발생 건수가 반비례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일반 시민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계량화한 수치다. 통상적으로 100보다 높으면 국민들이 경제상황을 낙관적, 이보다 낮으면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은행이 작성한 소비자심리지수와 경찰청의 범죄발생 통계를 비교해보면, 지수가 100에서 95로 떨어진 2013년 사기범죄는 23만5,327건에서 26만9,161건으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수가 105로 회복세를 보인 2014년의 경우 범죄는 26만9,161건에서 23만8,378건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세계금융위기가 시작됐던 2008년에도 이 같은 경향은 뚜렷했다. 그 해 7월부터 분기마다 심리지수를 조사했던 것에서 매달 조사하는 것으로 바꿔 전년도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심리지수는 기준 100에 한참 못 미치는 82에 불과했으며 사기범죄도 전년도 18만1,700여건에서 20만2,000여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생계가 어렵고, 정상적인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기에 가담하면서 전체적으로 사기범죄가 늘어나는 게 불황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불황 타개책인 낮은 금리를 노린 사기범죄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놓는 낮은 금리 정책이 사기범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직접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낮은 금리 탓에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시중에 넘치게 되고, 이를 노린 사기범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맘껏 활동한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지난 3일 사기 혐의로 경찰에 적발된 A(57)씨는 “인도에서 다이아몬드 수입 사업을 하는데 투자하면 매달 10%의 수익금을 주겠다”는 말만으로도 11억원가량을 챙길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요즘 같은 시기에 10% 수익이 어디냐 싶었다”고 뒤늦게 욕심을 책망했지만 돈을 찾을 길은 없었다. 권력을 사칭한 비자금 사기도 대부분 고수익에 눈이 먼 피해자들의 심리를 공략한 경우가 많다.

재범 억제의 실패와 IT기술의 발달

물론 경제불황으로 사기범죄 증가의 원인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교정당국이 사기범 재범 억제에 실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2013년 기준으로 사기범으로 검거된 23만9,309명 중에 동종의 전과자는 21만5,536명에 달했다. 이 중 10% 정도인 4만8,684명은 5번 이상 사기죄로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형법은 사기범에 대해 징역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적발돼도 불구속 기소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도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죄질이 극히 불량한’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피해자 구제 역시 민사소송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처벌 수준이 낮으니 범죄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사기를 한 번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high risk-high return)의 도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IT기술의 발달로 휴대폰앱이나 인터넷으로 손쉽게 스미싱과 같은 사기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사기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박찬우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계장은 “최근 20~30대 젊은 층에서도 아르바이트라고 쉽게 생각하고 인터넷을 통한 사기범행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눈으로 사기 피해자를 보지 않고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기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이제는 죄의식 없이도 얼마든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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