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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타워가 없다, 정부는 허둥지둥 국민은 조마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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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타워가 없다, 정부는 허둥지둥 국민은 조마조마

입력
2015.06.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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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못막는 허술한 매뉴얼

국가적 위기 상황에 소통조차 안돼

정부 역할 공백 삼성병원 대응 실패

사망자 늘자 병원 정보 늑장 공개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27일 강원 춘천시 한 고사장에서 시험 관계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응시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출동해 있는 119 응급구조대원이 물끄러미 이를 쳐다보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이 치러진 27일 강원 춘천시 한 고사장에서 시험 관계자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응시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출동해 있는 119 응급구조대원이 물끄러미 이를 쳐다보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메르스 사태는) 국가가 뚫린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지난 11일 국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한 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삼성서울병원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정부에게만 책임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첫 환자 발생 후 아침마다 불어나는 환자와 사망자를 보며 국민들 사이에는 “과연 국가가 있기는 한 거냐”는 자조가 팽배했다. 우리는 왜 지난 40여일 내내 정부의 대응을 보며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했을까.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

메르스는 2012년 4월 중동에서 처음 발병한 후 지난해 3~5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지역 등에서 환자가 속출했다. 세계적으로 환자가 815명 발생하고 이 중 313명이 사망하자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5월22일 ‘중동호흡기증후군 국내 유입 대비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의심환자 진료 시 에어로졸(공기감염) 발생이 가능하므로 마스크 외 고글 착용 등 강화된 감염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달 여가 지난 작년 7월 질병관리본부가 만든 대응 매뉴얼에는 이런 경고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환자의 침이나 가래가 튀어서 닿는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머물 경우’만 밀접 접촉으로 정의했고, 의심ㆍ확진 환자 발생 시 병원이 할 일은 “관할 보건소로 신고하라”가 전부였다. “의심환자를 격리하고, 의료진은 개인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항목뿐 아니라 환자 발생 병원에 대한 정보 공개와 폐쇄 여부 등에 대한 지침도 없었다.

메르스 1차 유행의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을 ‘코호트 격리’(환자 발생 병동과 의료진을 함께 격리한 후 진료) 하지 않은 데 대해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장이 “당시에는 메르스 대응지침에 (코호트 격리) 개념이 없었다”고 해명한 것은, 지침이 실제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우리나라 특유의 좁은 병상 간격과 간병문화, 응급실 과밀화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세계보건기구(WHO)의 밀접 접촉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은 메르스 확산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감염병의 전파 경로를 추적해 추가 확산을 막는 일을 하는 역학조사관도 질병관리본부 소속 2명, 공중보건의(군 대체복무) 32명이 전부였다. 신종 감염병이 들어왔지만 이를 막을 매뉴얼도,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

▦컨트롤 타워도 없었다

허술한 매뉴얼과 부족한 인력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컨트롤 타워가 전체 상황을 총괄하며 행정력을 총동원해 일사불란하게 감염병 확산을 선제적으로 막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초기 컨트롤 타워는 의사 출신인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이었지만, 지난달 28일 평택성모병원에서 격리 범위 밖의 첫 환자가 발생하자 장옥주 복지부 차관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이 된다. 첫 사망자 발생 다음날인 2일 최경환 총리 대행이 처음으로 관계부처 장관 회의를 소집했고, 이날 문형표 복지부 장관으로 대책본부장이 또 바뀌었다. 잦은 컨트롤 타워 교체도 문제지만, 선제적으로 방역 체계를 구축할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메르스 발생 2주가 지난 뒤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으로 관련 회의를 주재했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8일에야 대통령은 즉각대응팀에 병원폐쇄 등 전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메르스 2차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초기 대응은 사실상 병원 측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했고, 이 과정에서 전국의 방역망이 뚫렸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학교 휴업을 발표하자 몇 시간 뒤 복지부가 “휴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는가 하면, 서울시가 “35번 환자가 1,500여명과 접촉했다”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자 청와대는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혼란을 키운다”고 비판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했지만 행정력이 총동원되기는커녕 소통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메르스 대응이 2003년 사스 때와 비교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국립보건원의 인력은 질병관리본부(481명)의 3분의 1도 안 되는 142명뿐이었고, 시스템도 훨씬 열악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총리가 전면에 나서 선제적으로 대응했고, 29개국에서 9,098명의 환자(사망 774명)가 발생했음에도 우리나라는 환자 4명(사망 0명)에 그쳤다.

▦조언을 듣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전문가ㆍ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였다. 환자 발생 병원을 공개해야 해당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진해서 신고할 수 있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병원 명단이 떠돌았지만 정부는 공개 거부 입장만을 고수했다. 보다 못한 대한병원협회가 이를 공개하려 하자 정부는 기자회견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정부는 환자 64명, 사망자 5명이 발생한 7일에야 뒤늦게 전체 병원 명단을 공개했다.

WHO는 “질병은 불확실성, 혼돈, 위기감 등에 의해 더 확산된다”며 2004년부터 ‘의사소통 가이드라인’을 정해 ‘발생초기 신속한 발표’, ‘투명한 정보공개’ 등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한국-WHO 메르스 합동평가단은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공개가 제일 중요했는데 이 부분이 실패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병원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한 결과”라고 해명해왔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정부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비공개로 결정해놓고, 결과적으로 잘못되니까 ‘전문가들의 얘기를 따른 것’이라는 것은 비겁하다”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6월 초부터 공개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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