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배척하지 않는 문화는 열린 사회의 척도다.”
“동성애는 가정행복을 파괴하며 치명적 질병을 일으킨다.”
28일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반된 시선이 서울 도심에서 정면 충돌했다. 개인의 성적 지향도 인권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성소수자들의 주장에 맞서 기독교계 등 보수단체 쪽에선 천륜과 가정 파괴를 거론하며 이들을 맹비난했다.
이날 오전 11시 제16회 ‘퀴어(Queerㆍ성소수자) 문화축제’가 역대 최대 규모인 3만여명(경찰 추산 7,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치러졌다. 9일 시작된 퀴어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성소수자ㆍ인권 단체, 주한 미국ㆍ프랑스ㆍ영국 대사관 등이 마련한 88개 부스를 둘러보고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현수막에 소망을 써 내려 갔다. 오후에는 성소수자로 구성된 풍물패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도쿄 토시마구 이시카와 다이가 의원의 동성애 지지 발언 등이 이어지며 축제의 흥을 달궜다. 특히 올해 행사는 26일 “연방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여서인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김범석(35)씨는 “미국 사회가 부럽다. 투쟁의 결과인 만큼 국내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더 뭉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단체 회원들은 옛 시청 건물인 서울도서관 앞에 놓인 질서유지선을 사이에 두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동성애ㆍ동성혼 반대’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힐난을 쏟아냈다. 한 기독교단체 회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무리들에 서울 한복판을 내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개탄했다.
오후 5시 행사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드러누워 행진을 가로막아 한때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가 상의를 탈의하거나 어깨를 드러내고 짧은 반바지 차림을 한 채 행진에 나서자 야유가 쏟아지는 광경도 목격됐다. 올해 퍼레이드는 7대 차량을 앞세우고 을지로와 명동 등을 거쳐 시청광장으로 돌아오는 역대 최장 코스(2.6㎞)로 진행됐다. 경찰은 지난달 동성애 반대 단체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행진을 불허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이 17일 서울경찰청장의 옥외집회금지 통고 처분을 정지하면서 극적으로 성사됐다.
퍼레이드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 됐으나 상대를 향한 날 선 주장을 접한 시민들은 착잡하다는 반응이었다. 행사를 끝까지 지켜 본 회사원 강모(42)씨는 “입장의 차이를 설득시키는 과정 없이 각자의 주장만 되뇌는 탓에 매년 퀴어축제 때마다 타협점 없는 대립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보수 측의 반발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감수해야 할 과정”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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