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이란 말은 원래 신의, 믿음, 의리, 약속 등을 저버리거나 이것들에 등 돌리는 행태를 가리키지만, 최근 한국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는 봉건적 제왕 마인드의 정치 지도자가 하극상을 범한 아랫것을 정치적으로 주살하려고 할 때 일부러 골라 쓰는 말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된 단계에서는 정치적 배신자를 외국에서 실종시켜버리거나 혹은 수염을 뽑은 뒤 정계 은퇴를 시키는 일 따위를 내놓고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배신자에 대해서 소위 국민의 심판을 요구하게 된다. 특히 바로 그 정치 지도자가 선거의 왕 혹은 여왕일수록 이 말을 쓴 효과는 아주 커서, 배신자로 찍힌 사람은 90도로 몸을 굽혀 거듭 사과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거꾸로 선 원뿔형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아래층은 국가, 가족, 친구, 스승, 은인 등을 배신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여기에는 형제를 살해한 카인 등이 있는데 특히 밑바닥 가운데에서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 등이 사탄에 의해 피를 철철 흘리며 물어 뜯기고 있다.
조선 시대 붕당 정치의 틀에서는 ‘사문난적’이라는 정치적 규정이 적대 세력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는데 악용되었다. 사문(斯文)이란 영어로 ‘this culture’쯤으로 직역될 수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가리켰다. ‘이 유교 질서를 어지럽히는 적’이라는 의미의 사문난적으로 몰려버린 사람들로서는 시조로 유명한 윤선도나 실학자 박세당 등을 들 수 있다. 정치 권력을 장악한 특정 붕당은 정적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해버림으로써 이념적 질서 자체의 배신자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사문’은 공자가 아주 위태로운 상황에서 “하늘은 이 문화를 없애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죽거나 다칠 리 없다고 제자들 앞에서 장담할 때 썼던 표현이다.
배신당한 사람 혹은 배신당했다고 착각하거나 상상하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격한 감정이 배신감인데, 배신감은 한국에서처럼 꼭 윗분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아랫 사람도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 지른 것도 일종의 배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물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예수는 궁극적으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입장이었다.
‘배신’에서의 한자 배(背)의 본자는 북(北)이었다. 갑골문 형태를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북’이다. 이후 ‘북’이 방위를 뜻하게 되자 ‘서로 등을 진다’는 뜻의 새 글자를 만들 때 ‘북’에다가 몸의 뜻을 가진 형태소를 추가하여 ‘배’ 자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서로 등을 지고 있다는 모습의 의미는 ‘패배(敗北)’란 단어에도 남겨져 있다.
‘사기 열전’에서 가장 극적인 배신의 드라마를 겪은 사람으로서는 오자서를 들 수 있다. 오자서는 초 나라 평왕의 태자 스승이었던 아버지가 평왕에 의해 살해되자 오 나라로 도망했다. 오자서는 오 나라에서 왕의 종친을 섬겨서 오왕 합려가 되게끔 한다. 나중에 초 나라 수도를 함락시킨 오자서는 묘를 파헤치고 평왕의 시체를 300번이나 채찍질하여 원한을 풀었다.
오왕 합려가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죽은 뒤 아들 부차가 후사를 잇게 되었는데 다시 월 나라와 싸워 대승하게 되었을 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부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중에 거꾸로 적의 모략에 빠져서 오자서로 하여금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오자서는 자신의 눈을 빼어 성문에 걸어두고 월 나라가 오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죽게 된다. 결국 월왕 구천은 오 나라를 멸망시킨다.
사마천은 오자서전을 끝맺으면서 “원망하는 일의 해독이 사람에게 끼치는 게 심하구나”라고 덧붙였다. 시체 채찍질을 다른 사람이 비난하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길은 멀다(日暮途遠)”고 대꾸했다. 원한과 독기 때문에 망가진 요즘 한국 정치판을 간결하게 묘사할 때 쓸 수 있는 사자성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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