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미신고·진료 거부 제재 반발
"병원급만 겨우 160억 쥐꼬리 지원" 정부 성토
국내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료단체들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메르스 방역 실패는 정부의 부실한 초기 대응과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인데, 정부가 이를 의료기관 탓으로 모는 등 ‘희생양 찾기’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원의 모임인 대한의원협회는 1일 ‘이런 나라는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메르스 사태로 정치권과 정부의 보건의료에 대한 잘못된 인식, 대형 병원 쏠림 현상 등 왜곡된 의료체계의 자화상이 드러났다”며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체계를 제대로 바꿔야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대책을 보면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국가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목숨을 걸고 헌신하는 의료인들을 위해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대출 운운하는 한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들은 정부의 책임 전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의원협회는 논평에서 “보건당국은 의료인들이 메르스 환자를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 2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했는데 마치 의료인의 미신고가 메스르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몰아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메르스 확산 책임을 의료기관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스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진을 처벌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의사협회에 따르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해 의원들이 입은 피해는 의원 1곳 당 2,344만원에 달했다. 일부 의원들이 폐쇄 조치됐고, 환자 수도 전년 대비 60% 감소했기 때문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보건당국이 메르스로 피해 입은 의료기관에 16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원 규모가 턱없이 작고 그마저도 대상을 병원 급에 한정했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은 앞서 제2의 메르스 예방을 위해 ▦응급실에 격리구역과 음압병상 의무 설치 ▦감염병 의심 환자는 1~2인 격리병실 입원 ▦감염병 관리 허술 의료기관에 벌칙 부여 등 대책을 밝혔다. 하지만 의료인들은 재원 마련 없이 의료기관에 부담을 떠넘기는 대책이라고 반발했고, 메르스 사태의 근본 원인인 대형 병원 쏠림 현상 등 의료체계 개선책은 빠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의원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앞에서는 ‘메르스 전사’ 운운하며 한껏 치켜세우고는 막상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규제만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의료인이 전염병 관리에 최선을 다할지 의문”이라고 성토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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