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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다, 고로 존재한다] 단추, 삶을 여미는 꽃봉오리

입력
2015.07.0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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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천양희의 ‘단추를 채우며’ 중)

시인은 오와 열을 맞춰 달려 있는 단추를 통해 웅숭깊은 생의 통찰을 보여준다. 성급히 채우다 실수하면 하나하나 다시 풀어서 채워야 하는 게 단추의 숙명이다. 우리가 사회에 첫발을 내밀 때, ‘첫 단추를 채운다’라고 말하는 건 ‘여밈’이라는 단추의 기능적 특징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 탓이다. 생의 각 단계에서 사회적 사건을 맞는 마음의 태도를 단추란 사물로 표현한 것이다. 안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메르스가 한국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육중하다. 초기 대응과정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의료시설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메르스는 장기국면에 들어섰다.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다.

기원전 1세기 이후, 구슬 모양의 금속 단추를 루프 형태의 고리에 끼우는 단추가 등장했는데, 그 모습이 꽃봉오리와 닮았다고 해서 같은 뜻의 프랑스어로 ‘bouton’ 이라 부르던 것이 버튼(button)이 되었다.

단추의 풀고 잠그는 방식은 한 시대의 서사를 써내려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단추는 13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난 신상이었고, 1250년경 프랑스에선 첫 단추제작업자 조합이 만들어졌다. 초기에 사람들은 단추를 레이스나 리본과 같은 장식품으로 생각해 보석세공인들이 단추를 제작해 팔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용성이 강조되었고 재료도 놋쇠나 구리, 유리로 대체되었다. 14세기 후반, 단추 덕분에 여자들은 처음으로 팔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는 좁은 소매에 몸 선을 강조하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목둘레와 소매의 크기를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단추의 발명과 더불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신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몸에 주목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간은 옷과 더불어 표정과 제스처, 포즈를 발명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팔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대세였다. 팔뚝 부분을 에로틱하게 보이도록 타이트하게 조였는데 이때 소매선을 따라 작고 매혹적인 단추들을 일렬로 장식하곤 했다. 각종 귀금속과 크리스털, 구리, 유리, 천 등으로 만든 버튼은 인간의 시선을 성적 매력이 가득한 신체 부위로 보이게끔 강조하는 기능을 했다. 이후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추는 본격적인 멋과 장식, 궁정 내의 서열과 위상을 드러내는 기호가 된다. 포켓 덮개와 커프스, 스커트 주름 상단에 수많은 단추를 달아 장식했다.

단추의 소재와 그 사용에 있어 계급에 따른 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다. 계급별 사용 가능한 사치품목을 규정한 법령에 따라 왕과 최상위 귀족만 금속 와이어로 촘촘하게 엮어 금이나 은과 세팅한 단추를 사용했다. 이 시대에는 서식처 단추(Habitat Button)라 하여 말린 꽃이나 연인의 자른 머리칼,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을 유리단추 아래 넣어 다녔다니 인간의 상상력도 다채롭다.

퇴근 후 서둘러 셔츠를 벗다가 단추가 떨어져나갔다. 단추란 형상을 자세히 보니 두 개의 눈이 달린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세상의 많은 단추가 둥근 원형이란 점이 고맙다. 모나고 각진 단추를 달면 그만큼 우리의 삶도 단추의 형상을 따라 가지 않았을까? 19세기엔 동물의 뿔로 만든 빼쪽한 단추가 인기를 끌긴 했다지만 말이다. 단추를 달 때는 반드시 목 부분에 작은 헝겊 패치로 여백을 두어 달아야 한다. 너무 재촉하면 두 눈동자 사이의 틈에 균열이 가고 쉽게 떨어진다. 단추는 그저 옷을 여미는 소품이 아니다. 단추는 우리의 의복과 삶에 리드미컬한 질서와 조율의 감성을 부여한다. 단추가 떨어졌다는 건 내 삶의 호흡이 가파르다는 뜻이리라. 쉬어야겠다.

김홍기·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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