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 가속화ㆍ통합정신 치명타
그렉시트 현실화땐 나토까지 흔들
그리스 국민투표가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채무자인 그리스는 물론 채권자인 유로존도 모두 패배한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감한 부채탕감이 없다면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가속화할 것이며, 창설 정신에 치명타를 입은 유로존은 위상이 흔들림과 동시에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렉시트가 현실화 된다면 그리스와 러시아가 가까워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흔들리는 등 안보위기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우선 국민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그리스 정부가 갚아야 할 채무가 산적해 있다. 오는 10일과 17일 각각 20억유로, 10억유로의 국채 만기가 돌아오고 13일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다시 4억 5,000만유로, 2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올해 돌아오는 만기 부채가 250억유로가 넘는데다 이후 2054년까지 매년 50억~100억 유로에 달하는 외채 만기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 찬성이 우세하다면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IMF로 이뤄진 국제채권단 트로이카와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하게 된다. 그리스는 협상을 통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구제금융 조건인 연금 축소, 증세 등 추가 긴축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여도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지난달 공개된 그리스 채권단의 미공개 보고서에서는 그리스가 주요 채권단의 개혁 요구 조건을 수락해도 2030년까지 지속적으로 부채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투표 결과 반대가 우세할 경우엔 “새로운 3차 구제금융 협상이 48시간 내 타결될 것”이라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장담과 달리, 전문가들은 20일까지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그리스는 ECB에 대한 채무 35억유로를 갚지 못하고 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이 끊겨 그리스 은행이 무너질 위험성이 커진다. 그 결과 그리스 정부는 자금 조달을 위해 자체 화폐 드라크마를 찍어낼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그렉시트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사태는 유럽의 경제적 통합을 시도해 온 유로존에도 심각한 타격을 줬다. 유로화의 창시자인 오트마르 이싱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 교수는 그렉시트는‘유로에 가입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애초 창설 취지가 환상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리스가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유로존에 남는 것도 다른 국가에 나쁜 선례가 되기 때문에 문젯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좌파 정당 포데모스 등이 그리스의 예를 따라 긴축반대를 더욱 강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10조1,000억유로에 달하는 유로존 경제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유로존이 그렉시트로 인한 비용을 충분히 감당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경제 구조가 불안한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선례가 만들어 지면서 유로존을 이탈하는 회원국이 잇따르거나 유로화 절상과 유로존 수출 경쟁력 하락, 유로존 성장률 잠식으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스 위기는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안보 위기까지 야기할 수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경우 러시아와 가까워져 나토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토 관계자는 그리스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자, 나토의 민감한 논의 내용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리스와 채권단의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치프라스 총리를 러시아로 불러 차관 제공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럽 남동부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인 그리스가 러시아와 가까워지면 크림반도와 흑해뿐만 아니라 지중해까지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서방 국가들의 우려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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