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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역사를 더 기억하고 더 기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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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역사를 더 기억하고 더 기려야 하는가”

입력
2015.07.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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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평화기행단이 벨기에에서 머물렀던 베지몽 캠핑장 인근의 작은 성은 나치가 순수혈통의 아리안족을 늘리겠다며 인종실험을 자행했던 곳이다.
유럽평화기행단이 벨기에에서 머물렀던 베지몽 캠핑장 인근의 작은 성은 나치가 순수혈통의 아리안족을 늘리겠다며 인종실험을 자행했던 곳이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은 지난 2일 이번 여정의 첫 1주일을 꼬박 머물렀던 프랑스를 떠나 ‘베네룩스 3국’으로 향했습니다. 첫 방문지는 벨기에. 이틀간 잠자리를 내어준 베지몽 캠프장은 평화기행단에게는 아주 특별한 장소인데요, 캠핑장 바로 옆의 작은 성이 바로 히틀러와 나치가 끔찍한 인종실험을 자행했던 곳이랍니다.

지난해 첫 유럽평화기행 때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이곳을 캠핑 장소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단원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peace tour’라고 쓰인 걸 보고 캠핑장 주인이 여행의 취지를 묻더니 이 성의 내력을 일러주었습니다. 한데 성 근처엔 어떤 표지판도 자료도 없고 마을에서도 이미지를 우려해서인지 쉬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냥 캠핑만 하고 떠났다면, 주인장께서 티셔츠를 눈 여겨 보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역사를 여러 우연이 겹쳐 만나게 된 것입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우리의 평화기행을 돕는 듯했습니다.

나치는 순수 혈통의 아리안족만으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허황된 꿈에 집착했습니다. 이른바 ‘레벤스보른(Lebensbornㆍ생명의 샘)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위해 순수 아리안 혈통의 상징이라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성들을 모아놓고 나치 친위대원과 강제로 성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베지몽의 작은 성이 그런 ‘아기공장’으로 쓰인 것입니다. 순수 혈통의 아리안을 만드는 것이 진정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여기고 자원한 여성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성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그 현장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이 여성들은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묻히고 잊혀졌던 어두운 역사는 벨기에의 양심 있는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찾고 증언을 수집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베지몽에서의 인종실험에 관한 포럼도 열렸답니다.

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벨기에 리에주의 요새.
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벨기에 리에주의 요새.

다음날에는 1차 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리에주 요새를 찾았습니다. 독일군은 프랑스로 진격하는 길목으로 벨기에를 택했는데 뜻하지 않는 저항에 부딪쳐 발목을 잡히자 민간인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요새의 포대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자유와 유럽의 해방을 위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경을 이곳에서 겪어야 했던 여기 잠든 용기 있는 사람들, 이 앞에서 우리는 그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자.’

베지몽과 리에주를 방문한 뒤 한 대학생 단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회가 어떤 역사를 더 기억하고 더 기리려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박힌 말이었습니다.

올해는 일본이 불법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을 체결한지 110년이 된 해입니다. 네덜란드로 향한 우리는 먼저 헤이그에 있는 이준(1859~1907)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기념관은 열사께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기 전 머물렀던 호텔을 개조해 만들어졌습니다. 작고 허름하지만 결기가 서린 듯한 기념관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평화롭게, 외교적으로 독립을 찾으려 했던 열사의 삶, 그리고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국에서 맞이한 그의 죽음을 찬찬히 되짚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네덜란드에서는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힘 없는 나라의 백성이든, 강대국의 국민이든 모든 이는 평화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말을 새삼 되새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희망나비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뿐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더 멀리, 더 힘껏 날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레지스탕스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레지스탕스의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삶이 손에 잡힐 듯 그려졌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협력과 저항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을 택했을까?’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위대하게 다가오는 레지스탕스의 삶을 만나고 보니, 벨기에 여정에서 우리 모두 공감했던 대원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더 기억하고 더 기려야 하는가?” 우리가 한뎃잠을 자고 거친 밥을 먹어가며 이어가는 평화기행이 바로 그 물음에 온 몸으로 답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단단히 신발 끈을 묶습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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