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1980년대 들어 전문적인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시도가 기승을 부리자 방어책의 일환으로 1982년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했다. 법률상 근거나 정관의 규정 없이도 이사회의 권한으로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포이즌 필을 발행할 수 있어 미국 기업 절반 이상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기업들의 요구로 19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시가총액 세계 2위인 구글이 기업공개 시점부터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등 창업자 그룹에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배경 중 하나도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1990년대 들어 극심한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해 2005년 신주(新株) 예약권이라는 일본식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했다. 이사회가 설치된 회사는 이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회사는 주주총회에서 포이즌 필을 발행할 수 있다. 2009년 8월 현재 약 4,000여개 상장사 중 569개사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계 헤지펀드의 진출이 많은 유럽에서도 경영권 방어 제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EU(유럽연합)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한 상태이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명시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은 1984년 국영 통신회사인 브리티시텔레콤을 민영화하면서 단 1주만으로도 M&A를 거부할 수 있어 가장 강력한 경영권 방어제도로 꼽히는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2006년 상법 개정을 통해 포이즌필 제도를 도입했다. 주식인수증권의 행사로 발행될 신주의 최대수량을 한정하여 이사회에 발행 권한을 위임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더 강력한 방어장치를 도입하려는 기존 경영진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대세력 간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최근 포이즌 필을 통해 경영권 세습에 나서는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옥 기업지배구조원 팀장은 “최근 영국에서 포이즌 필 도입 의견이 나왔다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있다”며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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