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 자처… 靑에 쓴소리 안 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청와대와 유승민 원내대표 사이에서 파국을 막아냈다. 정치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줬지만, 스스로의 정치적 몸집은 그다지 키우지 못했다.
김 대표는 권력의 엄중함을 잘 알면서도 한동안 어느 쪽에도 서지 않은 채 영리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유 원내대표를 내치고 청와대 편을 들었더라면 ‘의리 없다’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에 대표직을 지키게 됐고, 내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커졌다.
김 대표는 시기를 재다가 당내 의원들의 사퇴 권고 형식을 빌어 유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원내대표를 찍어 내려는 청와대를 향해 공개적으로 쓴 소리도 한 번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호와 보수 혁신 등의 명분을 내세워 주류 친박계에 도전하는 모험을 거는 대신 안전하게 박근혜 대통령을 택한 것이다. 아직 차기 대선주자 입지를 굳히지 못한 김 대표로선 명분과 여론의 지지만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또 여전히 30%대의 견고한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박 대통령과 이른바 주류 보수에 싸움을 걸었다가 자칫 보수진영을 분열시켰다는 책임만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현재권력에 맞서는 승부수를 띄워 미래권력으로 자리매김할 기회는 흘려 보냈다. 차기 주자를 놓고 고민 중인 보수층 유권자들이 품은 ‘정치인 김무성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해소하지 못했다. 당분간 이어질 청와대 우위의 당청 관계 속에 김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또 누가 후임 원내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김 대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물론 김 대표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고 전략적으로 한 발 후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언제, 어떤 명분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어떤 비전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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