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의원실로 출근...원내대표실 들러 당직자들과도 인사
당분간 '정중동' 관측...총선 앞두고 '노선 개혁' 깃발 전망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원칙과 명분의 기치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운 탓으로 정치적 입지는 넓혔지만 당분간은 몸을 낮춘 채 지지기반 확대를 시도하려는 모양새다. 유 전 원내대표가 전날 측근들과 통음을 하면서 “내년 총선서 살아남아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9일 유 전 원내대표는 국회 본관의 원내대표실이 아닌 의원회관 자신의 방으로 출근했다. 평소보다 늦은 오전 11시쯤 의원회관에 나타난 그는 취재진의 집요한 질문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의원실 관계자는 “출근해서도 무언가 고민을 하시는 듯 별 지시나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서는 원내대표실에 잠시 들러 자신을 보좌하던 당 사무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사퇴 당일인 전날 오후엔 5개월 간 동고동락한 원내부대표단과 보냈다. 일부 원내대부대표들과 늦은 점심을 함께 하면서 그는 “헌법전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본다. 그런데도 볼 때 마다 내용이 새롭다”는 화두를 던졌다고 한다. 원내부대표였던 한 의원이 “사퇴 기자회견문에 어떻게 헌법 1조 1항을 인용할 생각을 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저녁식사 역시 김포의 고깃집에서 원내부대표 10여명과 함께 했다. 스트레스와 과로 등으로 한동안 술을 가까이 하지 않던 유 전 원내대표도 이날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꽤 마셨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꼭 살아남으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초선의원들을 가리켜 “이왕 정치권에 들어왔으면 재선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총선에서 살아남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식사에 앞서 ‘그간 고생시켜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건넨 덕담”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던 박 대통령의 발언과 연관돼 여러 해석을 낳았다.
이날 통음 술자리는 ‘초심’을 다 이행하지 못한 아쉬움도 배어 있었다. 또 다른 의원은 “최대 국정 현안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어서 마무리하고 내년 총선 공약 준비에 매진하려 했는데, 시작조차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계획대로 됐다면 유 전 원내대표가 4월에 밝힌 ‘신보수 선언’도 정책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찬을 파하면서 유 전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일일이 안으며 “그간 고생했다”고 말했다. 의원들도 “이렇게 함께 일했던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의정활동 하며 서로 도와주자”고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유 전 원내대표는 당분간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노선투쟁의 깃발을 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입법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드러낼 수도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미 지난해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조직’을 지원해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법적ㆍ정책적 근거를 담은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만찬에 참석한 한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는 당분간 의정활동에 매진하겠다고 했다”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뜻을 함께 하는 의원들이 생기면서 신보수 선언의 후속이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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