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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뱃살에 관하여

입력
2015.07.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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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존재의 가장 정치적인 부위인 뱃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침에 일어나면, 존재의 가장 정치적인 부위인 뱃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샤워 물줄기 속 뱃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긋나버린 사랑에 대한 향수가 떠돌던 옛 SF 영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Solyaris)가 떠오른다. 저 멀리 우주에는 몽환적인 행성 솔라리스가 있고, 그 솔라리스의 한 가운데에는 치열한 사유를 지속하고 있는 ‘생각하는 바다’가 있다. 지구인들은 ‘생각하는 바다’를 탐구하고자 우주 스테이션을 건설한다. 그러나 탐구 과정에서 거꾸로 자신들의 과거를 만나게 되고, 그만 미쳐버린다.

21세기 지구 한구석의 아침, 둥근 행성처럼 부푼 아랫배를 안고 샤워 하고 있는 중년 사내가 있다. 참을 수 없이 무거운 그의 복부 한 가운데는 근거를 알 수 없는 허세처럼 팽창하고 있는 지방질의 바다가 있다. 그의 바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입수학문제를 풀고 있었을 때도, 온 나라가 경제 위기에 빠졌을 때도, 월드컵 거리 응원을 했을 때도, 투표를 했을 때도, 창당을 했을 때도,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시도했을 때도, 탈당을 했을 때도, 그의 뱃살은 신도시 부근 보신탕집처럼 끝내 생각이 없었다. 그의 뱃살은 ‘생각하지 않는 바다’ 바텀리스(bottomless)다.

바텀리스를 탐구하기 위한 가내(家內) 스테이션, 샤워 부스에서 짐짓 엄숙한 얼굴을 하고서 뱃살에 대해 생각한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걸쳐 있는 이 무책임한 비무장지대를 묵상한다. 아, 뱃살은 평생 긴장해 본적이 없구나, 지배층이로구나, 늘 여유롭구나, 지방층이로구나, 천진난만하구나, 진짜 혁명을 겪지 않았구나, 부드러운 옷 아래 숨어 있었구나, 이데올로기적이구나, 맛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한사코 음식을 더 달라고 해서 먹었구나, 많은 것을 착복했구나.

혹시 뱃살은 몸 전체가 사실 뱃살임을 감추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과 머리조차 뱃살의 일부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뱃살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이후에도 이 질문은 중년 남자의 뱃살처럼 이 사회에서 부풀어왔다.

민주투사들이 집권하여 독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양태를 보여줄 때, 과거의 독재자들이 여전히 기립박수를 받을 때, 새롭게 등장한 정치가 한층 더 구태일 때, 진보의 간판이 보수만큼 낡아 보일 때, ‘진보적’ 지식인이 여성의 고용에 대해 오히려 소극적일 때, 인권운동가 출신 정치인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도외시할 때, 저 정치인들이 모두 직선제에 의해 뽑힌 이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 지금 교통정체를 탓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차가 바로 그 교통정체를 만들고 있음을 깨달을 때, 뱃살과 나머지 몸 간의 경계는 점점 더 의문시 되었다.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다고 오래 전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적대를 일삼는 이 사회의 정치언어는 사실 모두가 한패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과거가 뱃살의 거대한 분비물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제정신으로 샤워 부스에서 나와 출근길에 오를 수 있을까.

보수든 진보든, 민주든 독재든, 공(公)이든 사(私)든, 좌든 우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과거 우리의 정치적 삶을 구획해 온 구분들이 부풀어 오른 뱃살에 의해 흐려진 오늘, 정치를 살아있게 하던 동력도 시들었다. 정치는 구분에서 출발한다. 구분을 지음에 의해 비로소 복수의 단위들이 생겨나고, 복수의 단위들이 존재할 때 비로소 관계가 존재한다. 그 관계가 특유한 정치의 역학을 만든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치의 중요한 과제는, 앙상해진 도덕적 진정성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구분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뱃살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결국 몸 전체가 뱃살이라면, 뱃살이 뱃살을 개혁할 수 있는가? 피하지방이 내장지방을 개혁해야 하는가? 그 개혁은 어떤 정치경제를 전제한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존재의 가장 정치적인 부위인 뱃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 생각마저 뱃살이 꾸는 꿈에 불과할지라도.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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