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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 괴로움ㆍ외로움 30년간 보듬어 준 큰언니들

입력
2015.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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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용산 성매매 집결지에 이씨ㆍ미국인 문 수녀 쉼터 세워

"처음엔 자존감만 찾아주자 생각, 새 삶 개척한 여성들 꽤 많아요"

20일 서울 명동성당 코스트홀에서 열린 막달레나 공동체 설립 30주년 감사미사에 참석한 문애현(왼쪽) 수녀와 이옥정 대표는 단칸방의 쉼터를 교육센터, 건강센터, 여성연구소를 갖춘 공동체로 이끈 환상의 짝꿍이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가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공동체와 인연을 맺은 사제 20여명이 참석했으며, 2부에서는 쉼터 식구들의 토크쇼가 열렸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20일 서울 명동성당 코스트홀에서 열린 막달레나 공동체 설립 30주년 감사미사에 참석한 문애현(왼쪽) 수녀와 이옥정 대표는 단칸방의 쉼터를 교육센터, 건강센터, 여성연구소를 갖춘 공동체로 이끈 환상의 짝꿍이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가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공동체와 인연을 맺은 사제 20여명이 참석했으며, 2부에서는 쉼터 식구들의 토크쇼가 열렸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냄비도 아닌 사람이 냄비 공장에 왜 돌아다니는 거에요?”

덩치 큰 건달이 쏘아댔다. 붉은 빛이 들어 찬 1980년대 용산 성매매 집결지. 화장기 없는 낯선 아줌마가 어슬렁대니 눈총이 날아들었다. 냄비나 기계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이르는 속어. ‘너네 집 기계 잘 돌아가냐’ ‘녹 슬어서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식이었다.

어떤 사연으로 발을 들였건 부속품 취급을 받았고, 업주나 성을 산 남성 모두 당당한데 성을 판 여성만 탓하던 시절. 이 골목에 등장한 배짱 좋은 두 여자, 이옥정(69)씨와 미국인 문애현(86ㆍ미국명 진 말로디) 수녀가 차린 상담소 겸 쉼터 ‘막달레나의 집’이 이 여성들 곁을 지킨 지 30년이 됐다. 20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설립 30주년 감사미사를 앞두고 만난 이씨는 “인정받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많은 분들 도움 속에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이씨와 문 수녀가 처음 만난 것은 84년. 여성들 처지에 놀란 보험판매원 이씨가 작은 상담소를 꾸렸고 부산에서 봉사하다 교육 차 서울을 찾은 문 수녀가 “같이 살겠다”고 나서면서 이듬해 허름한 식당 2층에 둥지를 텄다. 한국말이 서툴러 문의 ‘개조심’팻말을 보고 “개조심씨 계세요”를 외쳤다는 문 수녀나, ‘오지랖 넓은 언니’이씨가 처한 환경은 만만치 않았다. 여성들은 환각제 없이 손님을 받기는 죽기보다 싫다며 자주 ‘콩알’(환각제)에 취해 있었고 빚을 떠안거나 학대당하는 걸 당연시했다.

“처음에는 자존감만 되찾아주자고 생각했어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이들이 안타까워 같이 얘기나 듣고, 밥이나 국수를 비벼먹고, 잠자고, 김장해먹고, 생일이면 미역국 끓여 먹었죠. 모여 노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국수 한 그릇에도 웃음보가 터졌어요.”

가족과도 연락이 끊기거나 소원했던 터라, 사람들은 난생 처음 생일상을 차려준 언니들에게 눈물을 쏟았다. 그저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언니는 왜 아무것도 안 물어봐?”하고 궁금해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유래한 집의 이름을 두고는 ‘뭐든 달라면 주는 집’ ‘막다른 곳에 처한 이의 집’ 등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게 사무치게 외롭고 괴로운 시절을 함께 버텼다.

이씨는 업주, 펨푸(호객꾼), 여성들의 자녀들에게 ‘이모’로 통했다. 학부모 면담, 운동회날 2인3각 달리기 등을 도맡다 88년부터는 아예 글방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쳤다. 연고도 없이 골방에서 생을 등진 여성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도 이씨의 몫이었다. 업주들은 이씨와 문 수녀의 등뒤로 “재수없다”며 소금을 뿌렸고, 화장터에서는 ‘단골’로 여겼다.

20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막달레나 공동체 30주년 감사미사'에 앞서 만난 이옥정(69) 대표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그저 외롭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며 함께 살아온 것 뿐"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20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막달레나 공동체 30주년 감사미사'에 앞서 만난 이옥정(69) 대표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그저 외롭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며 함께 살아온 것 뿐"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두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주위를 돕자 점차 모두 이들을 이웃으로 여겼다. 동네 건달 쟈니는 문 수녀의 회갑에 밴드를 불러 춤판을 벌이는가 하면, 참기름 장사를 해보라며 기름 짜는 기계를 가져다 주는 등 없는 살림에 보탬이 될 궁리를 했다.

“여성운동 하는 분들이 보면 기가 찰 수 있죠. 가해자와도 어울린 셈이니까요. 그래도 저흰 일방적인 가해자는 없다고, 모두가 어떤 면에서 피해자라고 생각했어요. 자꾸 만나서 선한 마음을 끄집어 내주자고.”

그 덕에 집결지 한복판에서 집단 상담이나 회의도 했다. 두 번의 이사 끝에, 2005년 2월 용산 일대가 철거되면서는 청파동으로 터를 옮겼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 여러 차례 방문할 만큼 교구에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종교를 강요한 일은 없어 희망자가 줄줄이 나온 2004년에야 단체세례식이 열렸다.

식구 중에는 가정을 꾸리고, 학위를 따고, 재봉기술을 배워 독립하는 등 새 삶을 개척한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 대표는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속으론 성매매를 관두길 바라고 기원했죠. 그래도 누굴 재단하거나 치유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어떤 일을 하건 우선은 하루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편견에 시달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99년 문 수녀가 공식활동에서 은퇴한 뒤 애면글면 집을 꾸려온 이씨는 ‘막달레나 공동체 대표이사’보다는 ‘큰 언니’로 불리고 싶어했다. 여전히 돌아봐야 할 여성들이 많은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소위 영업이나 프로포폴 중독 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 많죠. 그 친구들이 더 이상 고생 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 자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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