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광업의 후신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일본 정부가 2009년, 2010년 두 차례 미군포로 징용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으나 일본 기업의 사과는 처음이다. 미국인 제임스 머피(94)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 회사 대표들의 사과를 받아들인 뒤 “음식, 약, 옷, 위생시설 없이 하루하루를 노예처럼 지냈다”며 참상을 회고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광업의 4개 광산에 강제징용된 전쟁포로는 수천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머피씨는 노역한 미국인 800여명 가운데 생존 두 명 중 한 사람이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현의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도 문제의 광산 중 하나다.
그러나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를 우리는 선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네덜란드, 영국 등 강제노역에 동원된 다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만 하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미 의회 연설에서 “깊은 회개” “영원한 애도” 등 최고 수위의 수사를 동원한 반면 한국과 주변국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내달 아베 담화를 앞두고 미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전략적 사과’로 보이는 이유다.
일본은 지금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우리 법원의 잇단 판결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는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날도 미씨비시 측은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선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는 말로 피했다. 일본 기업의 이중적 태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일본 정부가 해당 기업들에게 한국법원의 판결을 일체 수용하지 말라는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 정부는 어제 방위백서를 통해 2005년 이후 11년 째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궤변을 이어갔다. 중국에 대해서는 “일방적 주장을 타협 없이 실현하려 한다”며 중국발 위협을 고조시켜 집단적자위권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보였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정부는 역사적 진실은 변할 수 없다는 의연한 자세로 일본과의 역사전쟁에 흔들림 없이 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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