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구한 천연기념물 솔부엉이, 처음에 잘못 보살펴 1년째 못 날아
좋은 뜻으로 주운 새끼 야생동물, 섣불리 나서지 말고 전문가에 알려야
22일 충남 예산의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야외계류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솔부엉이가 노란 눈을 부라리며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그러나 솔부엉이의 비행은 초라했다. 힘차게 날개를 흔들었지만 몸은 공중에 뜨지 않았다. 듬성듬성 깃털이 빠진 날개가 원인이었다. 지난해 위험 상황에서 구조된 589번째 야생동물이어서 ‘14-589’로 불리는 솔부엉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구조 후 정성스런 돌봄이 오히려 독
솔부엉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지난해 8월 전북 전주에서 비를 잔뜩 맞은 채 한 시민에 의해 구조됐다. 한달 간 시민의 보살핌을 받은 솔부엉이는 9월15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입소했지만 날개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중간중간 깃털이 빠져 온전한 날개라고 보기 힘들었다. 당시 구조센터에선 번식기가 지난 봄~여름 사이 조류들이 털갈이를 시작하기 때문에 이듬해까지 지켜보기로 했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솔부엉이의 날개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솔부엉이는 올해도 ‘고향’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ㆍ인도ㆍ스리랑카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까지 넓게 분포하는 솔부엉이는 봄에 한국을 찾아 번식한 뒤 10월 중순이면 다시 동남아 등으로 이동하는 여름철새다. 김희종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선임수의사는 “구조한 시민이 센터에 입소시키기 전까지 솔부엉이를 돌봤는데 젖은 깃털을 말려주고 돌보는 과정에서 중요 날개깃의 모양이 잘못 잡혀 비정상적인 날개를 갖게 됐다”며 “안타깝지만 이번 가을까지 날개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솔부엉이를 평생 돌보기 힘들고, 천연기념물이라 분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비슷한 이유로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를 안락사시켰다. 수리부엉이 새끼를 구조한 시민이 3개월간 돌보다가 방사했으나 제대로 날지 못하자 구조센터에 연락한 경우였다. 이 수리부엉이는 곧게 뻗어야 할 날개ㆍ다리 뼈가 휘어지는 등 기형으로 자라 비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은 “구조한 새끼 맹금류에게 닭고기를 먹이로 주는 경우가 많지만 닭고기에는 뼈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칼슘 성분이 거의 없다”며 “새의 뼈가 굵고 단단해지지 못해 급격히 커지는 몸을 감당 못하고 기형으로 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조한 새끼 야생동물을 주로 실내에서 돌보다 보니 칼슘 흡수율이 떨어진다. 칼슘은 새끼 동물의 골격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로, 체내에서 칼슘을 흡수하려면 비타민D3가 있어야 한다.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합성된 비타민D2는 햇볕을 받아야 비타민D3로 바뀌기 때문에 구조된 새끼 야생동물이 실내에만 있을 경우 칼슘이 부족해져 골격 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구조센터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주의 역시 문제다. 2013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수달은 구조센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저체온증 상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사했다. 수달이 물가에서 사는 점을 고려한 시민이 구조 후 수조 환경을 조성해 준 게 원인이었다. 새끼 수달은 방수 능력이 완벽하지 않아 야생에서도 물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다. 이를 모르고 수조에 계속 넣어둔 것이 화근이 됐다. 김영준 부장은 “구조한 시민 입장에서 선의를 갖고 애지중지 돌본 것이 오히려 야생동물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야생 적응 방해하는 섣부른 구조
일부 시민들은 좋은 뜻으로 새끼 야생동물들을 구조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미에게서 ‘납치’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5월 입소한 멸종위기종 2급인 삵 새끼 5마리가 그런 사례다. 충남 서산의 한 농부가 볏짚 더미를 치우다가 어미 없이 모여있던 새끼 삵들을 구조했는데, 김희종 선임수의사는 “건강상태가 모두 양호한 것으로 볼 때 어미가 돌보던 개체들”이라며 “어미에게서 새끼를 빼앗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새끼를 구조할 때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수 시간 동안 지켜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TV 동물프로그램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점도 이런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준 부장은 “TV에서 사람을 잘 따르는 새끼 고라니 등을 보여주는 것은 가축ㆍ반려동물과 야생동물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나쁜 행위”라며 “‘야생동물을 키울 수 있다, 키워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 따라 사람 손에 들어온 새끼 야생동물들은 삶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손에 크면서 골격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거나 각인효과로 다시 야생에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각인효과는 동물이 시각ㆍ청각ㆍ촉각으로 경험한 대상을 부모로 생각하고 따라다니는 현상으로, 사람에게 길들여진 야생동물은 방사해도 같은 종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시 사람을 찾아 내려온다.
예기치 못한 인명피해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수컷 고라니는 번식철이 다가오면 서식하는 곳을 세력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사람에 의해 보살핌을 받더라도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
김희종 선임수의사는 “미아가 된 새끼 야생동물을 발견했을 때는 사진, 영상 등을 촬영해 구조센터에 연락한 뒤 지침에 따라 행동하는 게 가장 좋다”며 “야생동물을 살리겠다, 회복시키겠다는 선의(善意)가 오히려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글ㆍ사진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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