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3765명에 1870만원씩
중국 시장서 이미지 개선 위해 아베 정부 OK사인 받은 듯
한국 법원 피해자 소송 결과 촉각 "식민지 시기엔 합법적" 고수할 듯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회사에서 강제노역을 한 중국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제공하기로 중국 피해자 측과 합의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20일 강제노동에 징용된 미군 전쟁포로에 공식 사과한 데 이은 것이지만,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는 “법적인 상황이 다르다”며 외면하고 있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4일 일본의 교도(共同)통신과 중국 신화(新華)통신 등에 따르면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피해 보상금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노동자 3,765명을 대상으로 1인당 10만 위안(한화 1,87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대기업이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금을 주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피해보상 대상자도 사상 최다 인원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과 중국 협상팀은 내달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전후로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최종 화해협정에 서명한다.
이번 합의는 강제노역에 동원된 중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나왔다.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이 중국 피해자단체들과의 합의과정에서 2차대전 중 일본정부가 3만9,000명의 중국 노동자를 강제징용한 것과 이 중 3,765명이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기업에서 노동했으며 이 중 720명이 사망하고 당시 강제노역했던 중국인들이 인권을 침해당한 역사적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는 보상금 외에도 기념비 건설 1억엔(약 9억3,700만원), 실종자 조사비용 2억엔 등을 추가 지출키로 해 최종 보상액수가 약 80억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 따라 중국정부는 물론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본정부 입장과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라 중국인 피해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왔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미쓰비시가 사과와 실질적인 배상에 나선 것은 역사문제가 해외비즈니스에 주는 악영향을 무겁게 본 경영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중국은 국가간은 물론 개인청구권도 포기한 상황”이라며 “일본기업의 자체적 사과와 포괄적 금전보상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미쓰비시가 이처럼 입장을 바꾼 데에는 ‘전범기업’ 이미지를 탈색하는 게 중국시장 개척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의 과거사 부정 및 집단자위권법 강행에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것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9월 중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양국정부의 관계개선 지향을 배경으로 미쓰비시가 일본정부의 ‘OK 사인’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제 관심은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중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우리 피해자들에게도 같은 행보를 취할지 여부다. 미쓰비시의 다른 계열사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피해구제에 나선 사실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현재의 한일관계, 중국인에 비해 훨씬 큰 피해자 규모 등을 감안하면 전망이 현재로선 밝지 않다. 이번 조치가 중일관계란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다, ‘식민지 시기 합법적인 조선인 강제징용은 중국의 경우와 다르며 국제노동기구가 금지한 강제노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본정부 입장을 민간기업이 앞서갈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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