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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칼럼] 뭐라고, 탐정소설이라고?

입력
2015.07.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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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다. 그 짬에 어떤 책을 읽을까, 모처럼 벼른다면 탐정소설을 권한다. 뭐라고, 탐정소설이라고? 고개가 갸웃해질 수 있지만 이유가 있다. 더위와 짜증을 깜빡 잊을 만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일단 젖혀두자. 그보다는 요즈음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에 그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고개가 갸웃해진다면, 먼저 ‘가설연역법’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자. 예컨대 이런 것이다.

외출을 하고 돌아온 왓슨에게 홈즈가 말을 건넨다. “자네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부치고 왔군.” 왓슨이 깜짝 놀라 묻는다. “그건 그러네만 어떻게 알았지?” 홈즈가 빙그레 웃으며 답한다. “그거야 간단하지, 관찰과 추론을 통해 알았다네. 설명하자면, 자네 구두에 붉은 흙이 묻어 있네. 그런데 지금 런던에서 그런 흙을 밟을 수 있는 건 우체국 앞뿐이네. 그곳이 공사 중이거든. 다음으로 자네는 오늘 아침 내내 이 방에 나와 함께 있었는데, 편지를 쓰지 않았네. 그러면 자네가 우체국에 가서 전보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때 홈즈가 사용한 추론법이 바로 가설연역법이다.

간단히 가추법이라고도 부르는 가설연역법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설을 먼저 설정한다. 이후 그것에 부정적인 증거는 해결 또는 해소하고, 긍정적인 증거를 보강하는 검증절차를 거침으로써, 가설을 타당한 결론으로 제시하는 추론법이다. 홈즈가 왓슨을 보고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부치고 왔군’이라고 추측한 것이 가설이다. 그리고 ‘지금 런던에서 그런 흙을 밟을 수 있는 건 우체국 앞뿐’이라는 사실과 왓슨이 ‘아침 내내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증거가 가설을 타당하게 만든 검증절차다.

가설연역법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사냥꾼, 점쟁이, 탐정, 고미술감정사, 고생물학자, 정신분석가, 과학자, 발명가 등이 남몰래 활용해온 창의적인 추론법이다. 과학철학자 노우드 핸슨에 의하면 과학 분야에서만 예를 들어도, 갈릴레오가 가속도의 문제를 해결할 때, 케플러가 타원형 궤도를 구상할 때, 뉴턴이 물질의 입자적 본성에 대해 고심할 때, 러더퍼드가 원자구조를 떠올릴 때, 콤프턴이 빛의 알갱이 구조를 제안할 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고안할 때, 디렉이 반입자의 존재를 착안할 때, 유카와 히데키가 중간자를 예언할 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창의적 탐구에 이 방법이 사용되었다.

지난해 S그룹 계열사에 강연을 갔을 때 일이다. K 대표이사가 자기는 직원들이 가설연역법적으로 사고하고 일하길 바란다면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주어진 전제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결론만 이끌어내는 연역법적 사고나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결론을 얻어내는 귀납법적 사고로만 일하지 말고, 더 창의적으로 일하길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알아내는 추론법이다. 반면에 가설연역법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고법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의 추론법’ 또는 ‘발견ㆍ발명의 추론법’으로 통한다. 당연히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 매력적인 추론법을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답은 탐정소설을 읽는 것이다! 탐정소설 안에는 독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주인공이 어수룩한 조수나 경관에게 자기가 어떻게 범인을 알아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가설연역법을 활용한 추리들이 어김없이 전개되어있다. 응용심리학자 마르첼로 트루찌에 의하면, 홈즈 시리즈에만 총 217가지 사례가 들어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교재는 없다.

아이들의 방학도 시작되었다. 자녀에게 흔한 과외보다 탐정소설 한 질을 선물하면 어떨까? 단언컨대 21세기 교육의 관건인 창의적 사고력이 남 모르게 자라날 것이다. 어디 아이들에게뿐이겠는가! 해변 비치파라솔 밑이나 숲 속 나무그늘 속에 릴랙스체어를 펴놓고 비스듬히 기대앉아 탐정소설을 읽어보라. 우선 스트레스가 냉큼 사라질 것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처럼 매력적인 뇌섹남, 뇌섹녀가 되는 것은 뒤따라오는 선물이다.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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