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무리한 탑승
되레 운행 지연에 불편ㆍ혼란
승강기ㆍ에스컬레이터서도
"몇초 때문에…" 아찔한 순간
#28일 오전 7시45분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승객으로 꽉 찬 열차 한 대가 플랫폼에 들어섰다. 앞서 ‘지옥철’ 두 대를 연거푸 보내야 했던 조모(34)씨는 회사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전동차 문 안쪽으로 겨우 몸을 구겨 넣었다. 출발한 열차는 잠실역에서 또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30대 남성 한 명이 발 디딜 틈 없는 전동차 문에 몸을 던지고는 탑승을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열차 문이 닫히지 않자 “열차가 출발할 수 없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남성은 승객들의“내리라”는 짜증 섞인 항의를 받고서야 탑승을 포기했다. 그 사이 열차가 역에서 지체한 시간은 3~4분. 출근 시간 2호선 지하철의 평균 정차시간이 20여초임을 감안하면 후속 열차가 줄줄이 지연되는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최근 김모(54ㆍ여)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손잡이를 꼭 붙잡고 수시로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난 주말 겪은 사고 때문이다. 당시 충무로역에서 지하철 4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20여m 길이의 가파른 에스컬레이터를 탄 김씨는 뒤에서 뛰어 올라가던 남자 고등학생 무리에 밀려 앞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도착지점 바로 앞에서 넘어져 큰 사고는 면했지만 발목을 접질려 3주간 깁스를 해야 했다.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승강기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강모(35ㆍ여)씨는 지난 6일 5살 딸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에 끼는 사고를 당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이웃주민이 뛰어 들어오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습관처럼 ‘닫힘’ 버튼을 눌렀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왼쪽 손등이 긁힌 정도의 경상이었지만 강씨는 “이웃이 조금만 더 기다려 줬으면 사고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사례는 모두 ‘조금만 더 빨리 가자’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성숙하지 못한 공공시설 이용질서는 좁게는 이용객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고, 크게는 대형사고 유발이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돼야 할 문화로 꼽힌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최단기 압축성장을 이룩하는 등 순기능이 없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사고에서 안전불감증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외국인의 눈에도 한국인의 조급성은 유난히 돋보였던 모양이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 올해 2월 한국인과 외국인 540명에게 ‘한국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무엇이냐’고 설문했을 때 ‘빨리빨리(한국인 48.2%, 외국인 64.4%)’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인파로 북적거리고 시간에 쫓길수록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지하철 자동출입문과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승강기는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불쾌한 경험이나 불필요한 갈등이 빚어지는 주요 공간이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의 통계에 따르면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승강기 사고는 총 1,200여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800여건이 이용자 과실 탓에 일어났다. 사상자 1,600여명 중 중상자는 940여명이나 됐다. 공개된 사고사례에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이용자가 타려다 신체 일부가 문에 끼거나,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엘리베이터의 경우 문이 일찍 닫혀 뒷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추가 운행 탓에 전력낭비도 생긴다.
에스컬레이터는 이용자가 계단을 걷거나 뛰어 오르내리면서 넘어지는 사고가 다수를 차지한다. 승강기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들은 손잡이를 잡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바쁜 사람이 걸어 오르내리다 다른 사람과 충돌하면 뒤에 있던 사람들까지 연쇄적으로 넘어져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은 대부분 계단도 함께 설치돼 있어 급한 사람들은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근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 전동차에 몸을 날리는 풍경도 사고를 부르는 주요 원인이다. 서울메트로가 연도별 사상사고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사고 원인은 ‘출입문 관련’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만 전체 사고의 40%에 가까운 160여건이 출입문 이용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타느라 승객이 문에 끼거나 사고로 이어지면 자연스레 열차 운행도 지연돼 다수의 사람이 시간을 허비하는 사회적 비용도 발생하게 된다.
결국 시민들이 여유를 갖고 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 대안으로 지목된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조급성은 ‘기초질서를 지켜봐야 나만 손해’라는 불신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질서를 잘 지켰을 때 개인은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지 체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 방안으로 “정부가 특정 정책으로 단시간에 바꾸려 하기보다 언론ㆍ시민단체가 모범사례를 소개하는 등 지속적인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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