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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교사의 절규 "성추행 묵살… 학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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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교사의 절규 "성추행 묵살… 학교도 아니다"

입력
2015.07.3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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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파문 서대문 A고 여교사 증언

해당 교사 반성은커녕 탄원서 돌려

충격받은 부모 결국 딸 전학시켜

무력해진 학생들 또다른 성추행 노출

피해 교사들은 갓 부임하거나 기간제

대들지도 못하는 약자 노린 게 화나

"성추행 문제제기를 묵살하다니…". 교장을 포함한 교사 5명이 동료 여교사와 제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A고의 여교사 Y씨는 본보와의 통화 도중 끝내 눈물을 흘렸다. 게티이미지뱅크
"성추행 문제제기를 묵살하다니…". 교장을 포함한 교사 5명이 동료 여교사와 제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A고의 여교사 Y씨는 본보와의 통화 도중 끝내 눈물을 흘렸다. 게티이미지뱅크

“이게 무슨 학교인가요? 괴기영화 세트장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성범죄를 목격하고도 침묵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이런 상황이 너무나 끔찍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교장을 포함한 교사 5명이 동료 여교사와 제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A고의 여교사 Y씨는 31일 본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학교에 만연한 성범죄를 더 이상 학교 내에서 처리할 수 없어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할 것을 주도한 교사 중 한 명이다. 그 역시 이번 초유의 성추문 사태에 대한 초기대응이 미흡했고 수 차례의 문제제기에도 꿈쩍하지 않은 교장의 행태에 대해 개탄했다.

Y교사는 “애초 교무부장이던 B교사가 작년 2월 여교사를 성추행 했을 때 강한 징계를 했어야 했다”며 “그러나 병가, 연가, 휴가 등의 형태로 아무런 징계 없이 1년을 보냈고 다른 학교로 전출 가서 거기서도 부장교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B교사 성추행 문제가 징계 없이 넘어가면서 다른 성범죄 교사들 사이에서는 경계심이 낮아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난 4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C교사의 성추행 사건은 학교를 최악으로 밀어 넣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개교 때부터 참여한 50대 C교사는 평소 사고방식이 입시ㆍ경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고 Y교사는 말했다. 학생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강하게 드라이브 걸었고 개교 초기던 학교에서도 입지를 굳혔다. 학생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비인격적인 발언과 비아냥 섞인 말투 등이 일상화됐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Y교사는 “교장도 그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고 나중에는 못 건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달이 난 것은 C교사가 입시지도를 한다며 작년 초 별도의 특별반을 꾸미면서다. 그는 당시 1~2학년(현재 2~3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 했다.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피해자는 여학생 6명이었다. 참다 못한 피해 학생들이 부모에게 알렸고, 학부모는 경찰 고발을 검토했다. 작년 말의 일이었다. 학부모들이 C교사를 고발한다는 소식은 이 때 담임과 몇몇 교사를 거쳐 교장에게도 보고됐다.

그러나 교장의 결정은 상식 이하였다. 학생들과 격리시켜야 할 C교사를 올해 초 3학년 학년부장으로 내정한 것. 일부 교사들의 격리 요구에도 교장은 “아직 고발되지도 않았고 죄가 입증된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무시했다.

학부모들은 결국 올해 2월 C교사를 경찰에 고소했고, 조사가 들어가자 C교사에 대한 보직은 박탈됐다. 그러나 교장은 이를 교육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고, 다시 C교사를 1학년 담당으로 보냈다. 역시 격리조치는 없었다. 그러나 재기를 노린 C교사는 학기초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대로 ‘자신은 죄가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냈고, 이 사실은 피해학생 학부들에게까지 알려졌다. 결국 한 피해학생의 학부모가 “이 학교에는 내 딸 더 이상 못 보내겠다”며 전학을 시켜버렸고, 모든 과정을 알게 된 학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때서야 교장은 C교사를 병가를 보내 격리했다.

Y교사는 “올해 전출돼 온 영어과목 E교사의 성추행과 성희롱이 버젓이 벌어질 수 있었던 데는 학생들이 이미 좌절감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렇다 보니 여교사들에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추행을 일삼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Y교사는 ‘E교사가 엉덩이를 슬쩍 만지는 행위가 의도적인 것 같다’는 후배 여교사의 말에 다른 교사들을 조사했고 성추행을 당한 여교사가 한두 명이 아닌 사실을 파악했다. 이어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조사하니 그가 성희롱뿐만 아니라 성추행까지 했다는 진술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교육청 관계자는 “E교사의 성추행 대상은 여교사 6명이며 여학생들에게는 성희롱만 했다”고 말했다. 상반된 조사는 경찰 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여교사들의 문제제기로 E교사에 대한 학교측 조사가 이뤄지고 있던 바로 그날, 미술과목 D교사의 학생 성추행이 발생했다. D교사는 학교 성고충처리위원회의 책임교사다. Y교사는 “D교사는 작년에도 여학생들이 ‘가슴을 만졌다’며 경찰에 고발해 조사를 받았고, 이 사건으로 작년에 남자교사들 전체가 성인지 교육을 받아야 했다”며 “그러나 정작 성범죄를 저지른 C, D교사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장은 그런 D교사를 성고충처리위원회 책임자로 앉혔다.

Y교사는 “일부 여교사들이 D교사의 문제를 비롯한 C, E교사의 성범죄를 교육청에 보고하고 서울시경찰청 성폭력수사대에도 수사를 의뢰할 수 있으니 그 전에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라고 교장에게 요구했으나, 교장은 성고충처리위원회에서 D교사 문제를 처리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위원이라고 이름이 올라 있는 교사들은 자신이 위원인지도 몰랐고, 일부 위원은 D교사 직속 신참 교사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Y교사는 “그 위원들 명단을 짠 사람이 D교사였고 자기 말을 잘 들을 사람만을 명단에 올려놓고 그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라며 “이게 과연 정상적인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Y교사는 주저하면서도 교장의 성범죄 연루에 대해서도 밝혔다. 회식 장소에서 한 기혼 여교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성희롱을 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특히 교장을 포함한 50대 교사들에게 피해를 입은 여선생님들은 갓 부임한 어린 선생님들이거나 기간제 교사들이었어요. 모두 착하디 착해 대들지도 못하게 보이는 약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화가 납니다.” 수화기 너머로 Y교사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일각에서는 교장이 “너 C컵이냐”란 말까지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편, 시교육청은 이날 이 학교 교장을 직무유기와 여제자 성추행(여교사 성희롱 포함)등의 혐의로 관할 경찰서에 고발하고 8월 1일자로 직위해제 했다고 밝혔다. 또 동료 여교사를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추행한 뒤 1년 뒤 다른 학교로 전출간 B교사에 대해서도 경찰에 고발하고 직위해제 했다. ‘교육청도 앞서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교육청 관계자는 “경찰 수사 개시 때(2월)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때(4월) 공문을 받았으나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고 인정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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