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국 연방대법관이 4일 서울 용산미군기지에서 국내 성소수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하며 “(성소수자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용기를 내라”고 독려하는 등 파격행보를 보였다. 긴즈버그는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사회의 소수자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쏟아왔다.
이날 만찬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영화감독) 김승환(영화사 대표)씨 커플을 비롯해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씨 등 ‘커밍아웃(스스로 성소수자임을 밝힘)’ 인사들이 참석해 긴즈버그와 환담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긴즈버그는 이날 김씨 부부에게 혼인신고 불수용 소송에 대해 묻고, “미국에서 ‘결혼은 이성간의 결혼만을 의미한다’는 법률이 위헌 판결이 난 이후 동성부부 세 쌍의 주례를 섰다”고 소개했다. 김씨 부부는 동성부부의 법적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한 상태다. 긴즈버그는 다음 행선지인 베트남에서 동성과 사실혼 관계인 한 미국 외교관의 주례를 설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긴즈버그는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변화할 수 밖에 없고, 변화할 것”이라며 “변화한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용기를 내라”라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또 “미국도 변화가 네덜란드 보다 더 늦었다”라며 “(한국도) 차근차근 가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긴즈버그는 ‘한국 법률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헌재는 이에 두 번의 합헌 결정을 해, 또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라는 참석자의 얘기를 듣고 헌법소원 방식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는 5일 박한철 헌재소장과 만나 환담할 예정이다.
당초 주한미국대사관은 이날 긴즈버그의 만찬장소로 커밍아웃 방송인인 홍석천씨가 운영하는 서울 이태원의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나, 경호문제를 이유로 긴급히 장소를 변경했다. 대신 홍씨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공수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만찬은 긴즈버그의 요청으로 당초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긴즈버그는 이날 하씨와 ‘셀프 카메라’ 사진을 찍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긴즈버그는 이날 낮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예방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그와 양 대법원장은 소수자 보호, 인권 수호를 위한 대법원 역할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대법원은 전했다. 긴즈버그는 미 컬럼비아대 교수 시절 성(性) 구분 용어로 생물학적 의미인 ‘섹스(sex)’ 대신 양성평등의 가치를 포함한 ‘젠더(gender)’를 처음 사용한 일화, 로스쿨 졸업 당시 연방항소법원에 여성 법관이 없던 사정도 얘기했다.
긴즈버그는 대법원 방명록에 ‘한국 대법원의 환영에 감사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공통된 목표인 정의를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지 알아가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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