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컴퓨터 공학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ㆍ사진)는 1980년 6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 ‘작은’계약 한 건을 맺는다. CERN은 대륙에 흩어져 있는 학자들의 연구 정보를 빠르고 간편하게 모으고 나누는 프로그램을 원했다. 6개월 뒤 그는 ‘ENQUIRE’라는 프로토타입 시스템을 완성한다. 초보적 형태의 하이퍼텍스트 컨셉트 컴퓨터 데이터 교환이 그렇게 처음 시작됐다.
84년 버너스 리는 CERN과 다시 엮인다. 이번에는 정식 소프트웨어 공학자로서였다. 물리학자들의 개별 연구 못지않게 그 성과의 실시간 공유와 시너지 연구가 더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CERN은 이미 유럽 최대의 인터넷 노드(nodeㆍ통신 결절점)였다. 그는 89년 3월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확장, 문자뿐 아니라 사진과 음성 동영상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멀티미디어 정보교환 시스템을 제안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었다.
24년 전인 1991년 오늘(8월 6일), 최초의 웹사이트(Info.cern.ch)가 만들어져 외롭게 ‘온 라인(on-line)’했다. 첫 웹 페이지에는 WWW의 개념과 하이퍼텍스트 응용기술, 웹 서버 생성과 정보 검색 방법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 수록됐다. 그 주소(URL)는, 당시로선 문자 배열 자체가 생경했을,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였다. 버너스 리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가상의 그물망에 수백 만년 인류의 시공간이 얹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버너스 리는 9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MIT에 W3C(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을 설립, 만60세인 지금도 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W3C는 웹 발전을 위한 중립기구로, 다양한 웹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 그는 WWW에 관한 어떠한 특허나 로열티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W3C 표준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비용 없는(royalty free) 기술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WWW은 93년 일리노이대 재학생이던 마크 앤드리센이 만든 ‘모자이크’를 거쳐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익스플로러, 모질라사의 파이어폭스, 구글의 크롬 등 브라우저들의 각축과 진화를 통해 성장해왔다.
거기에도 어둠이 있다. 개인정보 사찰과 통제, 심화하는 정보의 빈부 격차, 현실의 그것들보다 더 탐욕스럽고 위험한 바이러스들…, 또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엄청난 괴물이 지금 내 곁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WWW의 세계야말로 인간이라는 신이 만들고 지적으로 설계하고 구동해온 순수 창조론적 공간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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