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70주년 행사서 '비핵 3원칙'도 19년 만에 생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는 14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전후 70년 담화에 대한 자문보고서에서 과거 중국 등에 대한 ‘침략’은 ‘피해를 줬다’며 반성했으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는 사실로만 기재해 파장이 예상된다.
전후 70년 담화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총리관저를 방문해 담화관련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고 교도(共同)통신이 6일 밝혔다. 보고서는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침략을 확대하고 무모한 전쟁으로 아시아 국가에 많은 피해를 줬다”고 명기하면서, 이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식민지배’와 관련해선 사실로서 기재했을 뿐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에서처럼 사죄할 필요성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보고서를 토대로 14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중국과 관련된 ‘침략’은 표명하되 한국 관련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뺄 가능성이 관측되는 상황이다. 특히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일본과 이성적으로 교류하는 것의 의의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등 한국의 대일정책이 이성과 감정 사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평가해 우리 정부가 반발하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히로시마(廣島) 원폭투하 70주년 기념행사 연설에서 역대 총리가 19년간 매년 언급해온 ‘비핵 3원칙’을 거론하지 않아 파문이 일고 있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가 1967년 천명해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내용이다.
아베 총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위령식 인사말에서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에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다. 가을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폐기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6년부터 본인을 포함한 역대 총리가 19년간 언급해온 비핵 3원칙 견지 방침을 거론하지 않았다. 파장이 커지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비핵 3원칙이라는 생각은 전혀 흔들림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군사대국화를 향한 아베 총리의 본심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쿠마 구니히코(70) 이사장은 “비핵 3원칙은 국시(國是)”라며 “의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면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아베 총리가 슬그머니 비핵 원칙을 생략하면서 일본이 이날 전세계에 던진 비핵화 및 평화 메시지는 크게 퇴색했다. 또 핵무기 폐해를 강조하면서도 재앙의 원인이 된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과거 반성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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